업주 2代 걸쳐 염전노예 25년, 환갑 넘어 벗어났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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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60대의 빼앗긴 인생

1988년 4월 조모 씨(당시 38세)는 전남 목포 버스터미널에서 A 씨를 우연히 만났다. 조 씨는 A 씨가 “염전에서 일하면 통장에 월급 70만 원이 입금된다”고 제안하자 솔깃했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자리를 찾던 그의 처지에서는 월급 70만 원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는 A 씨를 따라 전남 신안군 한 섬에 있는 B 씨의 염전에 도착했다. 한 달간 힘들게 일했지만 B 씨가 월급을 주지 않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씨는 “약속했던 월급을 왜 주지 않느냐. 섬을 나가겠다”고 항의했다가 B 씨에게 폭행당했다.

조 씨는 동료들이 섬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그는 “좁은 섬이어서 도망갈 수 없다”며 자포자기했다. 2004년 B 씨가 사망하자 염전을 아들(45)이 그대로 물려받았고 조 씨의 생활엔 변화가 없었다. 그는 B 씨의 집에서 130m 떨어진 빈집에서 산에서 나무를 해와 난방을 하고 빨래를 하며 살았다. 조 씨는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염전에서 25년을 보냈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조 씨는 지난해 1월 18일 이가 아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B 씨의 아내에게 “이제는 고향으로 그만 보내 달라”고 사정했다. 조 씨는 사흘 뒤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 다시 섬에 들어가 사흘간 B 씨의 아들에게 “임금을 조금만 달라”고 호소했다.

B 씨의 아들은 “현금 500만 원을 주는 대신 더이상 임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공증서를 작성토록 요구했다. 그는 공증서를 써주고 고향인 전남 진도에 돌아갈 수 있었다.

조 씨의 매형(70)은 25년 만에 귀향한 처남을 목욕탕에 데려간 순간 눈물을 펑펑 흘렸다. 처남이 입은 팬티는 뒤쪽 천이 거의 해어진 상태였고 옷 상의는 몸에서 나온 검정 땟물로 뭉쳐 딱딱했던 것.

전남지방경찰청은 B 씨의 아들을 감금·폭행 혐의 등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23일 밝혔다. 경찰은 조 씨가 늙어 더이상 일을 하기 힘들고 병치레를 해줘야 하는 것을 우려해 섬에서 내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씨의 매형은 경찰에서 “처남이 고교 재학 당시 반장을 할 정도로 똑똑했는데 염전에서 감금, 폭행을 반복해 당하면서 바보가 된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7일부터 염전 인권유린 실태 조사를 벌여 23일 현재 임금체불 70여 건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자 염전에 스스로 들어갔다가 피해를 입었다. 주인 2대(代)에 걸쳐 임금착취를 당한 피해자는 조 씨 등 2명이다. 경찰은 수사가 진행되자 염전 근로자 3명을 숨겨온 업주 홍모 씨(48)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안=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염전노예#인권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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