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환자 존엄 케어” 기저귀 없애 ‘4無 2脫’…<2>울산 이손요양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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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착한 병원]

울산 울주군 이손요양병원은 존엄 케어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한다.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병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실천의 핵심이다. 간호사가 환자의 욕창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는 모습(위 사진)과 환자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는 모습. 울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울산 울주군 이손요양병원은 존엄 케어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한다. 환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병원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실천의 핵심이다. 간호사가 환자의 욕창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는 모습(위 사진)과 환자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는 모습. 울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원장이 돈에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먼저 돌았다. 원장이 부산에 빌딩을 몇 채 사려고 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까짓 기저귀 아껴서 도대체 몇 푼 나오느냐는 불만이 병원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2007년 울산 울주군 이손요양병원. “기저귀 사용량을 줄이라”는 손덕현 원장(내과 전문의)의 지시가 있고난 직후 일어난 상황이다.

○ 4무(無) 2탈(脫)의 시작은 기저귀 탈출부터

‘4무 2탈.’ 노인의 냄새, 욕창, 낙상, 침대 생활을 없애고 기저귀와 신체구속도구에서 탈출시킨다는 이손병원의 실험이다. 실험의 시작은 탈기저귀였다. ‘기저귀는 어린아이들이 착용하는 물건’이라는 손 원장의 지론이 병원 전체로 전달됐다.

병원 종사자, 환자 보호자들로부터 엄청난 불만과 항의가 쏟아졌다. 일이 2, 3배나 늘었다. 결국 간호사 10명 중 4명이 병원을 떠났다.

하지만 환자들은 좋아했다. 이제는 자신의 쪼그라든 성기를 남들에게 안 보여도 된다며 “너무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누워만 있던 노인들 스스로가 변했다. 변을 ‘배출하기’에만 익숙했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배변습관을 체크하고 배변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환자 335명 가운데 중증 환자를 제외한 230여 명이 기저귀 없이 생활한다. 자신들이 알아서 화장실을 찾아가거나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동식 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12년 뇌경색에 시달리다 2013년 1월부터 기저귀를 차지 않기 시작한 김순임 할머니(73)는 “남들이 내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너무 부끄럽고 이젠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더 움직이고 정신을 안 놓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존엄 케어 실제로 가능하다


탈기저귀는 손 원장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존엄 케어’의 출발점이다. 그는 한때 부산에서 잘나가던 내과 의사였다. 하지만 2005년 손 원장은 갑자기 병원을 접고 50억 원의 대출을 받아 요양병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령화 추세로 노인 전문병원의 수익성과 전망이 매우 밝을 것이라는 게 그의 구미를 당겼다.

환자 인권보다는 편의 위주인 기존 병원 방식대로 병원을 운영하던 그가 노인 존엄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일본의 요양병원들과 교류를 시작한 2006년부터였다. 손 원장은 “평균 수명이 가장 긴 국가답게 일본은 1990년부터 존엄 케어를 시작했어요. 병원의 모든 하드웨어, 시스템이 환자 위주로 돌아가는 모습 자체가 정말 놀라웠어요”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는 4무 2탈 운동과 더불어 병원 안의 조명을 모두 아늑한 간접조명으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손병원의 탈기저귀 운동은 병원 냄새와 환자들의 욕창을 없애 버렸다. 용변을 곧바로 처리할 수 있으니 냄새가 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21일 취재진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 흔히 말하는 ‘노인 냄새’는 병원에서 맡을 수 없었다. 또 스스로 움직이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욕창 발생도 크게 줄었다. 지금은 전체 환자 중 단 2명만 욕창을 달고 있을 정도다.

또 사람들이 요양병원이라면 떠올리는, 환자의 온몸을 묶어 놓은 모습도 이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구속이 곧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낙상이 늘지는 않았을까. 김점숙 간호팀장은 “지난 몇 년간 오히려 사고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처음엔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도 많이 발생했다”면서 “하지만 침대생활 벗어나기 운동과 더불어 강도 높은 재활운동을 통해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자가 늘면서 낙상 위험성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 나이 들어 가고 싶은 병원으로


이손병원은 2013년 9월 신관 증축 뒤 국내 요양병원으로는 처음 치과를 개설했다. 무늬만 치과가 아니라 디지털 파노라마 촬영기,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 등 고가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 지역사회 외래환자들도 찾아올 정도다. 손 원장은 아직은 적자지만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무리한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치과를 만든 것 역시 존엄 케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고 잘 먹어야 4무 2탈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손 원장은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결국 나도 우리 환자들처럼 도움을 받으면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내가 늙었을 때 오고 싶은 병원, 짧은 기간이나마 인간답게 살다 간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만드는 게 우리 병원의 핵심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 ‘우리 동네 착한 병원’의 추천을 기다립니다. 우리 주변에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
고 있는 병원이 있으면 그 병원의 이름과 추천 사유를 동아일보 복지의학팀 e메일(health@donga.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울주=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선정위원 한마디]“요양병원 부정적 이미지 개선… 국가지원 절실”

착한 병원 선정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손요양병원의 ‘존엄 케어’ 철학이 전국 1200여 개 요양병원 전체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요양병원에 드리워진 어두운 이미지를 스스로 개선하고, 요양기관 내 노인 인권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선진 모델이라는 판단이다. 또 이손요양병원은 2013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평가에서도 최상위권이었다.

김명애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인증사업실장은 “4무 2탈이 가능하기 위해선 원장의 철학과 함께 직원, 환자, 보호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며 “아직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다른 병원들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모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4무 2탈을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먼저 최대 연 40%에 달하는 직원들의 높은 이직률 문제가 거론됐다. 장동민 전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 정도로 높은 이직률은 근무 여건이 상당히 열악하다는 걸 의미한다”며 “병원이 적자를 내면서 존엄 케어를 이어 나가는 건 경영상 한계가 올 수밖에 없으므로 우수한 병원에 대한 국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배지수 서울와이즈요양병원장은 “탈기저귀가 이 수준(3명 중 2명)에 이르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환자의 중증도가 낮아야 하고 재활치료만으로는 역부족이다”라면서 “현실적으로 상태가 좋은 환자들이 병원에 많이 들어와야 4무 2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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