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미주 ‘대일항전’에서 계속 이기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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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지난해 12월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이후 미국 내 한국 특파원들은 ‘종군기자’가 된 듯하다. 워싱턴과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잔혹한 침략의 역사를 덮으려는 일본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한국 사이에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대체로 승전보를 전할 수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진실, 정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인들이 적극 나서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신념을 지닌 깨어있는 미국인들은 ‘주미 대일항전’ 승리의 첫 번째 요인이다.

에드 로이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은 1월 8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 왜곡에 혈안이 된 ‘작은 나라’ 일본에 따끔한 경고를 전했다.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이후 미국 고위 정치인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는 1월 31일 글렌데일 소녀상을 참배했고 2월 17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인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2014회계연도 연방 통합세출법안에 위안부 관련 문구를 우직하게 집어넣은 마이크 혼다 미 연방 하원의원, 버지니아 주 의회에 교과서 동해 병기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티머시 휴고 주 하원의원과 데이비드 마스던 주 상원의원도 고마운 원군이었다.

일제의 침탈과 전쟁의 참화를 딛고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이 커진 것은 두 번째 요인이다.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일본대사는 지난해 말부터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를 상대로 “동해 병기 법안이 통과되면 버지니아 주와 일본의 경제협력에 차질이 올 것”이라며 낡은 ‘협박 외교’를 폈다.

하지만 버지니아 주와 한국의 경제관계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지난해 1∼11월 버지니아 주의 대일본 및 한국 교역량은 각각 21억7000만 달러와 5억1000만 달러다. 일본과는 전년 동기대비 11% 줄어든 반면 한국과는 13% 늘었다. 일본에 약 10억 달러 적자, 한국에는 1억5000만 달러 흑자였다. 대한국 교역의 추세가 더 좋다.

매콜리프 주지사는 지난달 동해 병기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기 직전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가 방문했을 때 버지니아 주에 있는 조지메이슨대 기념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고 한다. 안 대사는 이 대학이 다음 달 인천 송도에 국제캠퍼스를 내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올해 꼭 한국을 방문하라고 권했다는 후문이다.

깨어 있는 미국인과 커가는 한국의 국력을 매개하는 세 번째 성공 요인이 있다. 바로 현지 교민의 지혜와 노력이다. 특히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와 윤석원 태평양은행 이사장 등은 로이스 위원장, 혼다 의원 등을 지속적, 조직적으로 후원하면서 위안부와 동해,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배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생업을 접고 교과서 개정운동에 뛰어든 피터 김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회장이 없었다면 미국 전역에 번진 교과서 동해 병기 운동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이 칼럼을 쓰면서 김 이사에게 “조국이 뭘 도와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2, 3세대 교포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나라를 이해하고 뭔가 해야 한다고 각성하도록 한국 정부와 민간이 힘써 달라”고 했다. 제2, 3의 김동석과 피터 김을 길러내는 일, 그것이 주미 대일항전에서 이기는 길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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