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스케이트도 헤드폰도 녹색… 겨울왕국의 ‘초록공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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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여자 1000m 박승희 金-심석희 銅]
동메달 심석희는 누구

심석희(17·세화여고)는 ‘녹색 마니아’다. 스케이트는 물론이고 스케이트날을 보호하는 집도 녹색이고, 지상 훈련 때 신는 운동화 끈도 녹색이다. 경기를 기다리며 음악을 듣는 헤드폰 역시 녹색이다.

심석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어렸을 때부터 녹색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색이 더 예뻐 보이다 보니 온통 녹색이 됐다”고 말했다. 녹색은 ‘힐링(치유)의 색’.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 시대 ‘쇼트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자칫 깊은 시름에 빠질 뻔했던 한국 쇼트트랙을 치유했다.

심석희는 ‘자기 치유’에도 강하다. 전날 경기에서 넘어져도 다음 날 “밥 많이 먹고 힘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침 잘 먹고 나왔다”고 말하는 선수가 심석희다.

심석희는 강릉 경포초교 시절부터 유망주로 떠올랐다. 아버지 심교광 씨(51)는 제대로 운동을 시키고 싶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딸을 서울 둔촌초교로 전학시켰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남성복 판매, 중고차 매매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 했지만 자식 훈련비는 아끼지 않았다.

심석희가 신는 스케이트를 만드는 유오상 삼덕스포츠 대표는 “다른 선수들은 스케이트를 한 번 맞추면 3∼5년 신는다. 심석희는 1년마다 새로 맞춘다”며 “아버지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최고로 해달라고 부탁하신다”고 전했다. 심석희가 신는 스케이트는 한 켤레에 200만 원이 넘는다. 이번 대회에 신고 나간 스케이트는 오빠 명석 씨(22)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가지고 선물했다.

막내딸은 가족들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오륜중에 다니던 2012년 열린 2012KB금융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챔피언십 때 조해리(28·고양시청) 박승희(22·화성시청) 등 현재 ‘대표팀 언니’들을 물리치고 여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차세대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해 가을에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6개 대회에서 1500m 금메달을 싹쓸이했다.

중학교 때 이미 심석희는 키가 173cm나 됐다. 지금은 177cm 정도. 이전까지 한국 여자선수들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순발력을 앞세워 세계 정상을 호령했다. 심석희 이전에 쇼트트랙 여왕으로 불렸던 전이경(38)과 진선유(26)는 모두 164cm였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윤재명 감독은 “(심)석희는 키는 크지만 자세가 낮다. 이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다”며 “평소에는 말수도 적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승부욕이 대단한 선수”라고 말했다.

심석희는 여느 ‘진격의 세화여고(심석희 표현)’ 학생처럼 모델 김우빈 씨를 좋아하는 사춘기 여고생이기도 하다.

이제 심석희는 4년 뒤 평창을 보고 뛴다. 어린 선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기는 건 아닐까. “분명 너무 빠르게 목표를 이루면 그 다음이 문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왕이면 올림픽 2연패는 노려야죠.”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심석희#쇼트트랙#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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