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대통령의 글쓰기’ 펴낸 강원국 前 청와대 연설비서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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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고정된 과녁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움직이는 과녁이었죠”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좋은 연설문이란 쉬운 글로 적절한 사례와 비유를 들어 말하는 이의 메시지가 듣는 이의 손에 잡히게끔 쥐여 주는 글” 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좋은 연설문이란 쉬운 글로 적절한 사례와 비유를 들어 말하는 이의 메시지가 듣는 이의 손에 잡히게끔 쥐여 주는 글” 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대통령이 연설문 초안이 맘에 안 든다며 첨삭이나 메모 대신 아예 구술로 연설 내용을 녹음해 내려 보내는 걸 ‘폭탄 맞았다’고 해요. 연설문 작성자로선 최악의 비상사태죠. 최종 연설문을 대통령이 ‘OK’ 하고도 연설장에서 ‘애드리브’(즉흥발언) 하시면 연설문이 당신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라 안절부절했죠.”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의 저자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52)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총 8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대우그룹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그는 2000년 6월 청와대 연설담당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연설문을 쓸 때 ‘나’란 없죠. 대통령과 완전히 빙의돼 그의 생각을 그의 말투로 옮겨야 하니까요. 마치 유령작가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대통령의 과거 발언록을 살피는 것은 필수. 평소 대통령이 참모들과 식사하며 나누는 대화도 녹음해 들으면서 관심사와 말투를 내면화했다. “국민의정부 시절 친구들과 술을 먹는데, 술자리에서 제 말투나 논리가 영락없는 김대중 대통령이더라고요. 하루 24시간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다보니 닮아버린 거죠.”

연설문을 대하는 두 대통령의 스타일 차이가 있을까? “김 전 대통령은 초안의 큰 틀은 놔두고 세부적인 부분을 계속 다듬는다는 점에서 고정된 과녁이라면,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생각을 더하면서 판을 갈기에 움직이는 과녁이라 할 수 있어요. 연설문은 대통령의 마음이란 과녁을 향해 쏘는 건데, 움직이는 과녁이 아무래도 명중시키기가 더 어렵죠.”

스스로 최고로 꼽는 연설문은 2001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방한 당시 김 대통령이 한 만찬연설이다. “평소와 달리 초안을 하나도 안 고치시고, ‘연설문이 잘 됐으니 그 뜻이 잘 전달되게 통역에 각별히 신경 쓰라’ 하셨지요. 최고의 칭찬이었어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청와대 생활의 애환도 들려줬다. “2007년 노 대통령이 육로로 방북해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됐어요. 청와대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고생하던 터라 만에 하나 제 ‘볼일’ 때문에 일행 전체의 발이 묶일까 걱정돼 아예 전날 병원에서 관장을 해 속을 비우고 방북 길에 올랐죠.”

그는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전직 대통령들의 일화에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글쓰기 책이라는 본질을 잃지 않으려 대통령의 사진이나 친필도 일부러 책에서 뺐어요. 주제 선정부터 자료 수집, 표현과 수정까지 치밀한 과정을 거치는 대통령 연설문 작성의 노하우가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김대중 대통령#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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