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평생 모은 金 330돈 모두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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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임대아파트 거주 한정자씨 덜 먹고 덜 쓰며 차곡차곡 보관
“나보다 어려운 이웃 위해 써달라” 강남구청에 5800만원어치 내놔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이 평생 모은 금 1.2kg를 기부한 한정자 할머니. 서울 강남구 제공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이 평생 모은 금 1.2kg를 기부한 한정자 할머니. 서울 강남구 제공
“내가 금(金)이 좀 있는데…. 이걸로 좋은 곳에 써 주려오?”

18일 서울 강남구의 수서동주민센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수서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한정자 할머니(90)였다. 동주민센터 직원은 의아했다. 한 할머니는 가족도 없고 생계도 어려워 매달 약 40만 원을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 그런 한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렸다. 주민센터 직원과 한참을 실랑이하다 “통화하기 힘드니 집으로 와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바로 집을 찾았을 때 한 할머니는 ‘걷기 도우미’에 달린 주머니 속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곤 오래된 비단 천을 펼쳤을 때 주민센터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금반지부터 목걸이, 금덩어리까지 크고 작은 금붙이들이 가득했던 것. 알고 보니 한 할머니가 평생 모은 금 1.2kg(330돈 상당), 약 5800만 원어치였다. 안 먹고 안 쓰면서 모으고 모은 전 재산이었다.

할머니는 “집에 두면 행여 도둑이 훔쳐갈까 시장에 가거나 병원에 갈 때도 늘 꼭 끌어안고 다녔다”며 “이 금덩어리들을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강남구에 전부 기부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21일 찾아간 할머니 집은 냉골이었다. 오랫동안 난방을 안한 듯했다. 할머니의 낡은 카디건은 구입한 지 20년이 넘은 거였다. 그는 젊었을 때는 동대문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고 길거리에서 옷을 팔며 돈을 벌었다. 지금은 걷기조차 힘들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종이를 주워 팔며 하루 1000원이라도 꼬박꼬박 모았다.

할머니는 “2012년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은 마땅한 벌이가 없어 생활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식당에서 음식을 반 그릇만 주문해 먹어가며 돈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은 모두 금으로 바꿨다. 돈이 적게 모일 땐 아기 돌 반지, 벌이가 괜찮을 땐 어른 금반지나 목걸이를 사서 모았다. 할머니는 “돈이나 땅은 내가 늘 갖고 다닐 수는 없어 불안했다. 하지만 금은 (크기가 작아) 자식처럼 옆에 끼고 애지중지 보관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할머니가 기부한 금은 강남구가 5월 출범하는 강남복지재단에 전달돼 정부에서 수급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이웃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할머니는 복지재단의 ‘기부자 1호’로 이름을 올렸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할머니 손가락에 있는 금가락지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짜’ 금반지였다. 할머니는 “진짜 금반지는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제대로 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손가락에 낄 금반지 있으면 내놓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이 아흔에 치아도 거의 다 빠진 노파였지만 그의 미소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기부#기초생활수급자#금#한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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