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진흡]봄날은 영원하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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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 산업부 차장
송진흡 산업부 차장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2001년 6월 파업을 벌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도한 총파업에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단체교섭 협상권까지 민주노총에 위임했다. 1년 전 파업 때 민주노총 지원으로 임금이 크게 오른 것에 대한 ‘보은 파업’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일정에 맞추느라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아 ‘불법 파업’이 됐다.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파업을 접어야 했다.

19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현대차 노조)와 기아자동차 지부(기아차 노조)가 2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17, 18일 실시된 총파업 참여 찬반투표에서 두 회사 노조원의 60%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 투표 결과는 예견된 일이었다. 투표 전 금속노조 간부들이 두 회사 사업장을 방문해 파업 참여를 독려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싸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정치 파업에 대한 일반 노조원들의 거부감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임금협상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정치 파업에 참여했다가는 실익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과거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민주노총의 들러리를 섰다가 아무 성과 없이 물러났던 전례가 ‘학습효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목적상 정당성이 없는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것도 일반 노조원들에게는 압박이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현대·기아차의 생산 구조가 바뀌면서 일반 노조원들의 위기감이 고조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 회사는 국내 생산 비중이 90% 이상이어서 국내 공장이 멈춰 서면 당장 매출에 차질이 생겼다. 회사 측이 노조의 파업에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끌려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회사가 해외에 공장을 많이 세우면서 전체 생산량 가운데 해외 공장 생산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국내 공장이 안 돌아가도 해외 공장 생산 물량으로 어느 정도 수요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얘기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중국 4공장 등 해외 공장이 더 세워지면 국내 공장 의존도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인건비는 높은 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대·기아차 국내 공장 생산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가 사석에서 “노조가 파업을 무기로 회사를 압박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일반 노조원들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기아차가 정규 생산직 사원 모집을 했을 때 지원자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정년까지 신분 보장이 된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현대·기아차 노조원들이 영원히 ‘봄날’을 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세계 경기 하락으로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들면 여름이나 가을을 뛰어넘어 곧바로 겨울이 될 수도 있다. 현대·기아차 노조원들이 민주노총에 등을 돌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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