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삶의 속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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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한강대교 중간쯤에 이르면 ‘어제의 서울시내 교통사고’ 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온다. 교통사고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볼 때마다 저 안에 내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항상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기계에 문외한이지만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의 성능이 좋아진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빨리 멈출 수 없다면 빨리 달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브레이크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에겐 너무 생생하게 아픈 경우를 경험한다. 아주 오래 전 남편 회사의 체육대회에서였다. 갑자기 부인들의 달리기 경기를 하겠다면서 빨리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재촉을 했다. 한때 나는 달리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운동을 해보지 않은 지가 20년도 더 됐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열심히 달렸지만 나보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순간, 지고는 못 견디는 오기가 발동했다. 무리한 속도를 내면서 몸을 제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내 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넘어지고 말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그날의 일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넘어져 다친 무릎이 아픈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마음의 상처로 깊게 남은 것 같다.

우리의 삶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공존한다. 액셀러레이터가 의욕이라면 브레이크는 절제일 것이다. 절제 없는 의욕은 과욕이 되어 결국 나를 넘어뜨리고 만다. 운전 중에 제때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면 사고가 나듯이 삶의 속도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유난히 차가 없어 길이 뻥 뚫려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앞길이 시원하게 펼쳐질 때 오히려 나는 조심스러워진다. 자동차들이 붐빌 때는 행여 사고가 난다고 해도 미미한 접촉사고에 불과하지만 과속하다가 일어나는 사고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너무 잘나갈 때, 앞길이 훤해서 거침없이 달릴 때가 겸손과 절제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한 때이다. 날마다 사고가 없는 날이 없는 교통사고 전광판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도 나는 무리하게 질주하지 않았는지 내 삶의 속도를 점검해본다. 좋은 운전이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듯이 사는 것도 그러한 것 같다.

윤세영 수필가
#교통사고#브레이크#의욕#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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