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초월 청년고용 대책 마련”… 방법은? “글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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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맹탕’ 부처 업무보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예산이나 법안으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 등 효율적인 업무보고를 가로막는 요소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책, 과거 업무보고를 되풀이하는 정책, 용두사마로 사라지는 정책은 업무보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11일 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새로운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예산이나 법안으로 인한 현실적인 문제 등 효율적인 업무보고를 가로막는 요소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책, 과거 업무보고를 되풀이하는 정책, 용두사마로 사라지는 정책은 업무보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11일 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 대통령 업무보고는 정부부처로서는 한 해 업무 중 가장 큰 행사다. 통상 한두 달 정도 준비 작업을 하고, 보고 시기가 임박하면 담당자들은 합숙을 할 정도. 이런 현상이 매년 되풀이되다 보니 현실적인 여건을 판단할 겨를 없이 국정과제에 꿰맞춘 ‘말의 향연’이 되고 만다는 지적도 나온다. 15년 차인 한 정부부처 공무원은 “매년 새로운 정책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시류와 이슈에 맞게 적당히 고치고 이름만 바꿔 내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집권 2년 차 업무보고에서 이름만 바뀐 재탕 정책, 실현 가능성 없는 부실 정책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
사교육 대책이 ‘수능영어 쉽게 출제하기’
예술인 복지사업, 대상자 선정기준도 없어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해 담당 부처들이 내놓은 정책은 부실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30%대로 떨어진 청년(15∼29세) 고용률(39.7%)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에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책은 없었다. 고용부는 청년 고용률 개선 대책으로 △스펙 초월 멘토스쿨 확대 △청년인턴 정규직 전환 지원금 확대 △해외취업 지원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청년 고용률을 올릴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을 충분히 고용할 수 있는 새 중소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 즉 창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 부담에서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교육부는 사교육 감소 대책의 일환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문제를 쉽게 내겠다는 구상만 밝혔다. 하지만 영어 사교육은 대부분 유초등 단계의 영어유치원이나 회화 사교육이 고액으로 이뤄지는 반면에 수능 영어는 EBS 교재 암기 위주로 출제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없는 대책으로 꼽힌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영어에 비해 수학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든다는 분석도 많다. 이 때문에 일선 고교 현장을 잘 모르고 내놓은 대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2017년까지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자를 10만 명당 4.3명(2012년 기준)에서 선진국 수준인 2명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업무보고와 비교해 진전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어떻게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의 핵심 기치인 창조경제와 관련해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은 곳도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산업 수출액을 2013년 51억 달러에서 2017년 100억 달러로 늘리고 매출액도 91조 원에서 120조 원으로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나온 정책이지만 어떤 사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수출과 매출을 늘리겠다는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예술인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긴급복지사업도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대상이 될 1200명을 어떻게 선정할지도 간단치 않다.

보건복지부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매년 150개씩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전년(1.30명)보다 더 떨어진 1.18명 이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라는 지적이다. 여성단체 등에서는 “현 정부 내내 150개씩 늘려도 전체 어린이집 중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은 6% 수준에 그친다”며 “저출산의 심각성을 모르고 턱없이 부족한 수치를 제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도파업 겪고도 “노사관계 전반적 안정”
“고졸취업 확대”… 부당대우 해법은 안보여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노정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고용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정부 출범 초기에도 불구하고 분규발생 건수가 감소하는 등 지표상 노사관계는 전반적으로 안정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 방침에 노동계가 집단 반발하고 있는 상황과 철도노조의 파업이 사상 최장 기간(22일) 진행된 것 등은 전혀 고려치 않은 분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앞으로 본격화할 공공기관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용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노사관계 대책은 △법과 원칙에 입각한 노사관계 정책 기조 확립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추진 등 2가지에 불과해 매우 피상적이라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활성화해 고졸 취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잇달아 산업현장에서 문제가 된 고졸 취업자에 대한 부당처우 문제에 대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국방경영 효율화”… 2년전에 봤던 그 정책
“가족친화 기업 우대”… 작년 보고와 판박이


올해 업무보고 내용 중에는 지난해 업무보고 내용과 비슷하거나 정책 이름만 바뀐 것이 적지 않다.

안행부는 14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지역별 범죄지도’ 등 전국 지자체의 ‘지역안전지수’를 올해 말까지 개발해 2015년부터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는 안행부가 지난해 업무보고 때 “범죄 위험지역을 식별할 수 있도록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역별 안전지수를 개발해 생활안전지도를 만들겠다”고 한 것을 사실상 재탕한 것. 또 안행부는 지난해 4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폭설 한파 등 이상 기후로 재난 발생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부문별 재난안전 실태를 철저히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안전정책조정회의를 신설하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에 재난안전 전담부서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17일 경북 경주시 리조트 붕괴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목숨을 잃게 되도록 이들 기구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폭설로 주저앉은 체육관 건물을 2009년 준공 이후 한 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던 것. 안행부는 “건물 면적이 점검대상 기준에 못 미친다”고 해명하지만 ‘선제적이고 예방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여성가족부는 가족친화 인증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발굴하고, 정부 지원사업 참여 기업을 선정할 때 가족친화 인증기업을 우대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확충하고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업무보고 내용과 판박이. 청소년을 위해 상설 인터넷 치유학교를 운영하고 스마트폰 중독 청소년에 대한 상담·치료 매뉴얼을 보급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지난해 3월 박근혜 정부 첫 업무보고에서 ‘국군포로 납북자 관련 경제적 유인 제공 등 실질적 해결방안 모색’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올해에도 ‘대북 협의를 통한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 노력’을 업무보고에 포함시켰다.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업무보고에서도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 메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 내 납북자 국군포로의 귀환이나 생사 확인 등 실질적 해결은 답보 상태다.

일부 부처는 이미 대대적으로 발표한 정책을 업무보고 내용에 전면 배치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5월 ‘전투근무지원 분야 민간 개방 추진회의’를 구성해 이를 기반으로 올해 6000여 명의 민간 고용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1년에도 국방선진화 기반 확대 과제 중 하나로 이런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또다시 ‘전투근무 지원분야 민간 개방’을 국방경영 효율화 3대 중점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2년 전에도 추진한 과제가 되돌아온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보육교사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비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보고한 것도 지난해 발표한 제2차 중장기 보육기본계획에 포함된 사항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이미 발표한 입시 사전예고 기간 확대나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 지원사업도 올해 입시 대책으로 업무보고에 포함됐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편집국 종합
#대통령 업무보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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