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한일 역사마찰, 개입과 중재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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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역사관이란 것은 인생관과 닮은 것 아닐까. 본래 역사관은 다양해야 좋다. 풍부한 인생을 보낸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도 관용적이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대립하거나 정면에서 충돌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한일관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역사관 대립으로 정치 지도자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칙과 이념이 정면충돌해 실리를 도외시한 명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도자 수준에서 역사논쟁을 시작하면 관료들도 그 틀에 갇힌다. 또 미디어가 논쟁을 열심히 보도하면 국민감정이 자극된다.

일한관계에서는 역사마찰 외에도 영토문제가 있다. 일본 쪽에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왜 한국의 주요 인사가 독도를 방문해야 하는가이다. 정치 지도자가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구조화하고 복잡한 역사마찰을 진정시키기 위해 예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것처럼 먼저 수면 아래에서 양국 간 교섭을 통해 현안 해결 토대를 정비하고 그 위에 양국 정상이 회담하는 방안이 최선이다. 정상 수준에서 현안이 처리되면 한일관계는 정상화로 향해 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현안을 처리하면 좋을까.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이명박-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상회담 이후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다. 대립하는 역사관을 가진 두 지도자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측에 무라야마와 고노 담화를 명확한 형태로 재확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 즉 2015년은 ‘역사적인 해’다. 6월에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을 뿐 아니라 일본에서는 8월에 전후(戰後) 70주년 ‘아베 담화’가 발표되고 9월에 자민당 총재 선거가 실시된다. 거기에서 역산해 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역사문제를 안이하게 타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국(政局)보다 정권(政權)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안에 역사마찰이 수습되지 않으면 내년 한일관계는 최악의 사태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쉬워 보이진 않는다. 한국의 사정은 제쳐두고라도 일본은 4월에 소비세(부가가치세)율을 올리고 그 후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단적 자위권 논의에 따라 자위대법 개정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개입’ 혹은 ‘중재’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에 다함께 중요한 동맹국이다. 양국의 긴밀한 관계가 없다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안전보장상의 이익을 얻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최근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는 외교적 ‘자살골’이어서 그 때문에 4월 하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한국이 더해지게 됐다. 미 정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이전에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한일 대립을 ‘중재’하기 위한 것으로, 한일 쌍방에 그 의사가 없으면 어떤 성과도 낼 수 없을 것이다. 한일이 미국의 ‘호의’를 서로 빼앗아도 양국 간의 현안이 해결되진 않는다. 오히려 사태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미국이 강제로 ‘개입’하면 한일 쌍방에 잠재적으로 반미주의가 자극될 것이다. 일본은 상식 있는 보수세력이 힘을 잃고 반미 민족주의(국수주의)가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번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한일 쌍방에 있어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국수주의자들이야말로 역사를 부인하고 자기 입맛대로 수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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