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4>땅과의 인연에도 ‘금지된 사랑’이 있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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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 터를 구할 때는 “망설이면 놓치고 서두르면 당한다”는 격언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한 처음부터 100% 만족스러운 땅을 바라기보다는 살면서 애정을 갖고 가꾸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인호 씨 제공
전원생활 터를 구할 때는 “망설이면 놓치고 서두르면 당한다”는 격언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또한 처음부터 100% 만족스러운 땅을 바라기보다는 살면서 애정을 갖고 가꾸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2007년 여름, 필자는 강원도 홍천과 인제에서 인생 2막의 터를 찾기로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골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여러 부동산중개업소와 지인들로부터 꽤 많은 땅을 소개받았지만, 딱히 마음에 와 닿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그해 겨울에 지금의 터를 만나게 되었는데, 한눈에 ‘여기다!’ 하는 느낌이 왔다. 배산임수에 남향, 탁 트인 조망 등 객관적인 기준 외에도 뭔가 아늑하고 편안한 ‘끌림’이 있는 땅이었다.

하지만 흠결 없는 땅은 없는 법. 그 땅과 접한 산자락 끝에는 여러 개의 무덤이 있었다. 지적도상 폭이 좁고 굴곡이 진 진입로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물론 이런 이유로 땅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집사람에게 의견을 물으니 “느낌이 좋다”며 반색했다. 전원행(行)은 물론이고 터 구하기에서도 아내의 동의는 필수다. 부부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땅은 두고두고 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후 다른 땅들을 보고 또 보았지만, 더이상의 끌림은 없었다. 이듬해 봄까지 우리 부부는 첫눈에 반한 땅과 주변 지역을 몇 차례 더 답사한 뒤에야 비로소 매매계약을 했다. 전원 땅 구하기 격언 중에 ‘망설이면 놓치고, 서두르면 당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 그 땅의 장단점이 파악되고 ‘호불호’에 대한 판단이 서면 때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땅과의 연애에서도 꼭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강원도 홍천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주말주택을 마련한 J 씨(55)도 그렇다. 전문직이었던 그는 애초 이뤄지기 어려운 사랑을 선택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숲과 계곡에 송두리째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자연환경보전지역 안에 있는 땅(농지)을 덜컥 사버린 것. 외지 도시인들이 이 땅에 전원주택을 짓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J 씨는 애초 현지인(농민) 명의를 빌려 계약한 뒤 농민에게만 혜택을 주는 농업인 주택을 지어 이를 한꺼번에 양도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불법인 데다 자칫 추후 소유권 분쟁에 휘말릴 소지도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일단 땅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관련 법령을 연구하고, 중개사·토목측량업자 등 ‘해결사’도 두루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운이 따랐다. 때마침 J 씨가 사놓은 땅 주변은 고찰과 계곡을 중심으로 관광지화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J 씨는 근린생활시설(소매점)로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J 씨처럼 각고의 노력 끝에 금지된 사랑의 해법을 찾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 그리고 마음고생은 각오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J 씨와는 반대로, 전직 공무원인 P 씨(60)는 “땅 사서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귀촌 선배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아예 경기도시공사에서 가평에 조성 중인 전원주택을 분양받는 방법을 택했다.

황혼이혼이 낯설지 않은 요즘, 백년해로한 부부가 있다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일 게다. 땅과 사람의 인연은 어떨까. 강원도 인제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K 씨(60) 부부는 1980년대 초 결혼과 동시에 도시를 떠나 산골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그가 산 땅은 무려 3만3000m²(약 1만 평). 그러나 그가 지불한 돈은 3.3m²당 100원, 총 100만 원에 불과했다.

지금 이 땅의 가치는 대략 3.3m²당 10만 원이니, 33년간 무려 1000배가 오른 셈이다. 더구나 마을 주민들은 땅값이 뛸 때마다 하나 둘 팔고 떠났지만, 그는 되레 추가로 사들여 현재 소유한 땅만 수만 평에 이른다. 뛰고 나는 강남의 복부인일지라도 산골 농부의 묵묵한 땅 사랑과 그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땅 테크를 능가할 순 없을 것이다.

전원생활 터에 첫눈에 반할 수도, 그 터와 금지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입지와 가격, 그리고 인허가 과정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만족할 만한 땅을 만나기란 어렵다. 모자라는 부분은 매입 이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열심히 가꾸다보면 더욱 살기 좋은 땅, 가치 있는 땅으로 바뀌게 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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