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노예제 폭력성… 불편한 영화의 큰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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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인 ‘노예 12년’은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판씨네마 제공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인 ‘노예 12년’은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판씨네마 제공
불편한 영화다. 130분 내내 곳곳에서 뱉어내는 한숨과 탄식 소리가 무겁게 상영관을 메운다.

27일 개봉하는 ‘노예 12년’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840년대 노예제를 따르는 남부와 그렇지 않은 북부로 나뉘어 있던 미국이 배경이다. 뉴욕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난 흑인 바이올린 연주자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공연 제안을 받고 찾아간 수도 워싱턴에서 납치된다. 그는 노예수용소에 감금된 후 루이지애나 주로 보내지고 자유인 신분을 빼앗긴 채 12년간 ‘플랫’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살아간다. 노섭이 진짜 신분을 주장할수록 채찍의 강도는 세어진다. 루이지애나로 가는 배에서 또 다른 흑인은 “살아남고 싶다면 말을 아끼라”고 조언한다.

영화는 억압받는 흑인과 잔혹한 백인의 대결구도를 이어간다. 노섭이 만난 백인은 흑인을 인간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비교적 선한 인물인 첫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조차 노섭이 자유인 신분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빚을 탕감하기 위해 그를 악명 높은 농장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넘긴다. 극 중 유일하게 노예제의 부당함을 말하는 백인은 브래드 피트가 맡은 캐나다 출신 떠돌이 베스뿐이다(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다).

노예제를 다루는 방식은 역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가장 잔인하다 싶다. 흑인 남녀의 벗긴 몸을 전시하듯 세워 놓고 가격을 흥정하는 노예시장, 끊임없는 채찍질과 여성 노예에 대한 성폭행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여기에 노섭의 자유로웠던 예술가의 삶과 노예의 삶이 교차되며 노예제의 폭력성은 극대화된다.

비디오아티스트인 스티브 매퀸 감독은 ‘헝거’(2008년) ‘셰임’(2011년)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감각적인 영상을 자랑한다. 흑인 노예를 응시하는 듯 비추는 정지 장면이나 영화 중간중간 흐르는 이들의 노동요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미국에서 1853년 출간된 동명의 자서전은 당시 18개월간 2만7000부가 팔렸는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노섭의 목소리는 160년이 지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지금 더 큰 울림을 주는 듯하다. 지난달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16일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다음 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중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수상할 경우 매퀸 감독은 이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된다. 15세 이상.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노예 12년#노예제#자유인#흑인#스티브 매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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