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정렬의 병원 이야기]의료법인 영리 자회사에 대한 오해와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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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장례식장 주차장 등 부대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장례식장 주차장 등 부대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논쟁이 뜨겁다. 사실 이 논쟁은 1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우선 용어부터 보자. 의료법인이 영리냐 비영리냐를 가르는 기준은 설립 주체와 병원이 낸 이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비영리법인의 경우 국공립대학병원을 설립한 특수법인, 학교(연세대가 설립 주체인 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이 설립한 삼성의료원) 또는 의사가 설립 주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나온 수익은 반드시 정관에 정해진 고유목적 사업(장례식장이나 주차장 등)에 재투자해야 한다.

영리의료법인은 누구나 설립하거나 지분을 소유할 수 있으며 투자자에게 배당금 형태로 이익을 배분할 수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 병원에 한해 허용되며 국내 병원은 해당 사항이 없다. 미국, 스웨덴, 프랑스는 물론이고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은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정확하게 말하면 이런 영리병원의 허용이 아니라 의료법인이 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아주 다양한 것 같다. 영리 자회사 허용이 영리병원 허용의 전초전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의료법 개정 없이 가이드라인만으로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려 한다며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런 반대론자들의 의견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자본을 앞세워 병원을 확장하고 부대사업을 늘리다 보니 진료비가 상승한다. ②투자자의 이익을 올리려다 보니 비싼 검사 등이 남발돼 환자의 부담이 가중된다. ③고수익을 노리는 나라 안팎의 투기자본이 의료계에 진출하고 사모펀드들이 병원을 인수 합병한다. ④병원 소유주가 대리인을 내세워 자본을 끌어들인 뒤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⑤기존 대형병원들도 부대사업을 확장하고 병원을 더 키우려 한다. ⑥부자들은 의료서비스가 좋은 대형병원으로만 몰리고, 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은 무너지며 의료 양극화가 심해진다. ⑦병원이 영리 추구에 집중하면 의사들은 외판원처럼 돼 버린다.

이에 비해 영리 자회사 ‘찬성론자’들은 상대적으로 방어적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를 추진하다 높은 벽에 부닥쳐 지친 탓일 수도 있다. 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나 로드맵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물꼬’를 텄다는 인상이 강하다.

지난해 12월 13일 대통령 주재 투자 활성화 대책회의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자회사 및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허용 기준을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영리 자회사의 정체성과 할 수 있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세분했다.

즉 ①영리 자회사는 중소병원의 경영 어려움을 덜기 위한 조치다. 수익은 환경 개선, 장비 구입, 종사자 처우 개선 등 고유 목적에만 쓰도록 한다. ②영리 자회사의 범위는 의료법과 보건복지부의 규정(가이드라인)을 따른다. ③비(非)의료법인인 대형병원은 합병에 참여할 수 없다. 의료법인 간 합병 후에도 각 병원은 그대로 운영된다. ④자회사가 생산한 의료용품이나 의약품을 환자에게 사도록 강요하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⑤중소병원의 경우 부대사업을 병원이 직접 하지 않고 자회사가 하므로 진료가 소홀해지는 일은 없다. ⑥자회사 수익을 법인에 귀속하면 영리 행위로 볼 수 없으므로 비영리재단과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자회사 설립은 문제가 안 된다. ⑦사업을 ‘의료법상 부대사업 수행’으로 한정한다면 의료법 개정 없이 가능하다.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법과 제도 개정이 공표되고 있어 실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는 외국인 환자 1000명 이상 유치 의료기관, 외국인 환자 500명 유치 가능한 사업자에 한해 의료관광 호텔업을 3월부터 허용한다고 했다.

영리 자회사 설립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일은 뭘까. 아마도 사업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일 것이다. 우선 자회사를 설립할 여건이 되는 법인 주체들을 분류해 그들이 공통으로 할 수 있는 사업과 기관별로 특화할 수 있는 사업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크게 4가지가 필요할 듯하다.

①기존 의료법인에 허용된 사업은 지속한다. 교육 사업, 교육콘텐츠 사업, 의료기기 판매, 산후조리원, 장례식장, 식당, 주차장, 은행업 운용 같은 것이다. ②의료기관의 종류별로 허용 가능한 사업을 분류한다(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개원가 등). ③여행업 숙박업 임대업 등 해외 환자 유치와 국제화 사업에 포함시킬 사업을 정한다. ④의료정보통신(ICT) 생명공학 의료기기 개발 등 부가가치가 높고 산업화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한다.

이어 정부와 전문가그룹, 의료계 인사 등이 모여 허용할 것은 무엇이며 불가능한 것은 어떤 것인지 논의해 옥석을 가려야 한다. 허용 결정이 떨어진 항목에 대해서는 ‘속도전’을 벌여야 한다.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과 국익 차원에서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사업별로 허용할 내용을 다각화해야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그것이 환자와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인지 지속적으로 검토할 전문가그룹과 국가 조직도 필요하다.

의료 공공성의 강화와 의료 산업화·국제화는 동떨어진 ‘양날의 칼’이 아니라 함께 가는 시너지 요소들이다. 의료 산업화·국제화의 성공은 곧 의료 공공성 강화로 이어진다고 확신한다. 단 한 개만이라도 좋으니 모두가 동의해 축복을 받으며 첫 삽을 뜨는 사업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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