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샘물]정책보다 장관 홍보… 앞뒤바뀐 여성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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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물·정책사회부
이샘물·정책사회부
“기사는 저희 장관님의 멘트가 많이 들어가도록 해주시는 거죠? 문답형식으로 써주세요. 사진은 장관님과 사무총장님이 나란히 찍은 모습으로 나오게 해주시고요.”

윌리엄 스윙 국제이주기구(IOM) 사무총장과 여성가족부 장관의 면담을 앞둔 13일 여성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수차례 이러한 조건을 달며 취재를 요청했다.

1951년 설립된 IOM은 전 세계 15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된 정부 간 기구다. 이주민 역량개발과 인권보호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해오고 있다. 다문화가족 정책과 관련해 참고할 사례도 많이 축적돼 있다. 스윙 사무총장은 40년간 미국 외교관으로 근무한 뒤 2008년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 이 분야의 전문성도 평가 받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17일 면담 주제도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족 관련 정책이었다. 기자는 여성부에 “국민들에게는 정책적인 시사점이 중요하다. 사무총장이 말하는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쓸 것”이라고 답했다. 관련 자료도 IOM 한국 대표부를 통해 이미 받아 놓은 상태였다.

여성부가 기자에게 취재를 처음 의뢰한 것은 6일. 그때 기자가 “사무총장과 장관님의 면담 시간이 짧은 것 같다”고 하자 여성부는 “동아일보에 기사가 나갈 수 있다면 두 분의 면담 시간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러곤 13일, 여성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장관 중심으로 취재하고 기사화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가 “중요한 건 정책이지 장관님 동정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하자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취재는 없던 걸로 하고 장관님은 기자 없이 면담만 하겠습니다.”

여성부는 다문화가족 관련 현안에서 정책보다 ‘장관님 홍보’를 앞세울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여성부는 지난달 관계 부처 합동으로 다문화가족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한 이후,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여성부가 12일 개최한 ‘2014 지역센터(건강가정지원센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평가설명회’에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 수백 명이 “여성부 제발 정신 좀 차려라”라는 피켓을 들고 반발성명을 발표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IOM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다문화가정을 ‘우리와는 다른, 도와줘야 할 사람들’로 인식하게 만든다. 사회통합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책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이번 IOM 사무총장 방한과 관련해 여성부는 오직 장관의 사진이 어떻게 실리고, 발언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현장에서 “여성부는 정책 부처가 아니라 장관의 홍보를 위한 조직 같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샘물·정책사회부 evey@donga.com
#IOM#국제이주기구#여성가족부#윌리엄 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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