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뒤늦게 정한 진로… 거점학교에서 꿈 찾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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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거점학교 프로그램으로 ‘꿈과 끼’ 찾은 3인

일반고에 진학 후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분야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은 고민이 많다. 주요 교과목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일반고에서 예체능 분야 진로탐색과 대입 실기준비를 하기 쉽지 않기 때문. 외부 학원과 기관에서 실기고사를 준비하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사교육비 부담이 적지 않다.

일반고 진학 이후에 음악 분야로 진로를 정한 장민석 군(서울 재현고 졸·중앙대 작곡과 입학예정)도 그랬다. 장 군은 인문계열 대학 진학에 초점을 맞춘 일반고 수업과 예체능 실기 준비를 병행하기가 힘들었다. 미술 분야로 진로를 정한 우준영 군(서울 인창고2)은 학원에서 진행되는 대입 실기중심 수업이 아닌 전문적인 미술 공부를 원했지만 역시 미술 수업시수가 적은 기존 일반고에서는 만족할 만한 교육을 받기 어려웠다. 고3이 되고 뒤늦게 체육 분야로 진로를 정한 한종선 군(서울고 졸·한양대 체육학과 입학예정)은 체육 입시학원에 등록하는데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세 학생 모두 일반고 안에서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았다. 지난해 2학기 서울시교육청이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음악 거점학교]
무기력했던 수업시간…알찬 음악시간으로


최근 중앙대 작곡과에 합격한 장민석 군은 고1때 반에서 2등을 할 정도로 성적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취미로 중학교 때 피아노를 쳐본 적은 있었지만 고1때까지 장 씨의 꿈은 줄곧 대학교수였다.

장 군은 고1이 끝날 무렵. 정명훈 예술 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공연 동영상을 보고 진로를 정했다. 지휘자의 손짓과 몸짓에 따라 연주되는 악기들. 그 악기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하나가 돼 만들어지는 음악에 감동받은 것. 부모님이 주무시는 밤에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공연 영상을 보며 음악 분야 진로를 꿈꿨다.

장 군은 고2때 처음 집 근처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음악 교육을 받을 순 없었다. 장 군은 “6개월을 다니다 다른 실용음악학원과 클래식 작곡학원 등 서울시내 학원 몇 군데를 옮겨 다니며 고2 1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실기를 준비해야 될 고3때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실기학원에 갔지만 대입에서 경쟁상대가 될 예고생들은 낮에도 학교에서 실기준비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수업시간에 초조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장 군의 고민은 2학기 때 집 근처 서울 영신여고가 음악 거점학교로 선정되면서 해결됐다. 수요일과 금요일은 영신여고로 등교해 오후 3시 반까지 음악수업에 참여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교과수업을 받던 시간에 석·박사급 음악 강사에게 전문적인 음악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 음악시간엔 듣기 어려운 화성학, 작곡 수업을 들으며 음악공부에 푹 빠져 시간을 보냈다.

“고3이 되면서 실기 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거점학교에서 실기준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어요.”(장 군)

[미술 거점학교]
“입시미술 아닌 진짜 미술교육 받았죠”


우준영 군은 패션디자이너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옷감을 갖고 놀고 도안과 같은 디자인 관련 자료를 많이 접하면서 자랐다.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집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패션 관련 책과 영화를 많이 봤다. 고1때는 열정적인 삶을 동경하며 패션디자인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미술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학원에 다니긴 싫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눈으로 본 것을 그리지 않고 상상해서 풍경화를 그리는 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거든요.”(우 군)

우 군은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위해 미술작가들이 무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화실과 대학가 쪽에 유명 미술 입시 학원에도 다녀봤다. 하지만 무료 화실에선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입시학원은 대학 실기 위주 교육을 진행해 우 군의 지적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고2 2학기, 우연히 기사에 소개된 미술 거점학교를 알게 됐다. 우 군은 자신이 원하던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거점학교에 지원했다. 우 군은 사설 미술학원과 학교 미술수업에서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었다.

“거점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통해 디자인과 회화에 대한 차이도 알게 됐어요. 미술 작품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점학교인 서울 청량고까지 통학하고 있지만, 하고 싶던 공부를 하니 정말 즐거워요. 3학년이 되어서도 거점학교를 신청할 생각이에요.”(우 군)

[체육 거점학교]
같은 꿈 가진 학생들과 체계적 체육수업


한종선 군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고3 초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농구, 축구 등 구기종목을 잘하고 성격도 활발해 체대에 진학하면 좋겠다’는 추천을 받고 체육학과 진학하기로 했다.

3학년 때 뒤늦게 진로를 정한 한 군. 1학기 때는 학교 방과 후 활동으로 오후에 체육활동을 하면서 실기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체육 실기학원에 다니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돼 학교 체육관과 헬스장 등을 이용해 입시준비를 했다. 그러다 2학기 때는 모교인 서울고가 체육 거점학교로 선정돼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수업은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에 진행됐다. 처음엔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다. 체육 분야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한적이라 혼잡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3시간 정도 진행되는 스케줄이 각자 나오고 수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돼 실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한 씨는 한양대 체대의 실기 주 종목인 순환계측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느꼈는데 거점학교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주기적인 테스트를 통해 잘못된 동작을 수정해 기록을 줄여나갔다.

“거점학교에서 만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입시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어요. 거점학교가 아니었으면 경쟁 상대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진로가 같은 친구들을 만나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죠. 대학에서 더 열심히 공부해 스포츠 마케터나 에이전트로 일하고 싶어요.”(한 군)

▼ 2014년 서울시 거점학교 31개로 확대 ▼
서울시교육청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 시범학교인 신현고(체육·위쪽)와 영신여고(음악).
서울시교육청 지정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 시범학교인 신현고(체육·위쪽)와 영신여고(음악).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이하 거점학교) 프로그램은 일반고 교육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일반고 점프 업(Jump up)추진 계획’의 핵심 사업이다. 문용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사진)이 추진하는 역점사업으로 지난해 2학기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거점학교는 음악, 미술, 체육, 과학, 제2외국어, 직업교육을 할 지역별 거점학교를 선정한 뒤 참여를 희망하는 인근 지역 일반고 2, 3학년 학생들이 소속 학교가 아닌 거점학교에서 심화 정규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한 주에 2일에서 최대 4일까지 소속 학교와 거점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듣는다.

2013년도 2학기 시범운영 기간에는 서울시내 167개교 1137명의 학생들이 24개 거점학교에서 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4년에는 거점학교가 확대돼 서울시내 191개교 1841명의 학생들이 31개 거점학교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거점학교는 일반고 진학 후 뒤늦게 예체능 분야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했지만 일반고 교육과정 안에서는 끼를 키우기 어려운 학생, 예술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해 일반고로 입학한 학생,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교육비용이 부담돼 배우기 어려웠던 학생 등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문용린 교육감은 “예체능 분야 학생들은 학교 일반 교과목 수업 땐 상대적으로 흥미를 갖기가 쉽지 않지만 거점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관심 있는 진로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우며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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