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잘 못하니 시키지 마세요, 자신감 잃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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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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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보호에 도전정신 잃어가는 초등생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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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해요.” “안 할래요.” “더 쉬운 건 없어요?”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 A는 새 학기를 앞두고 고민이다. 학교 수업시간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계속 늘어 지도하기 쉽지 않기 때문. 스스로 선택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는 학생이 적잖다.

특히 탐구주제를 스스로 정하는 프로젝트 사회수업, 상상화 그리기와 나만의 캐릭터 만들기처럼 창의력이 필요한 미술수업은 진행하기 쉽지 않다.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좌절하는 학생들도 많다.

단원평가를 보면 항상 최상위권 성적이고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줄곧 입상하는 B 군. 지난해 열린 교내 미술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찢어버렸다.

A 교사는 어머니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예쁘게 봐주세요. 하나뿐인 아이예요”라고.

A 교사는 “평소 부모가 과제와 생활 대부분을 챙겨주는 데 익숙한 아이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 생기면 두려워한다”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모습은 실패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전했다. 》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초등생이 늘고 있다.

평소 부모가 공부와 생활 대부분을 하나하나 챙기고 어려운 일은 대신해주다 보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두려운 것. 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고 자라난 아이들은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서울지역 초등학교 1학년 미술수업 시간.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 붙여야 하는데 한 학생이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있었다.

담임인 C 교사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아이는 “가위질을 못 한다”고 답했다. 유치원 때부터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이해되지 않은 C 교사가 부모에게 전화하자 “어려서부터 유독 가위질을 힘들어했던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비교되며 자신감을 잃을까봐 하기 싫거나 어려우면 하지 않도록 했다”고 부모는 설명했다.

C 교사는 “최근엔 수학숙제를 하기 어려워하는 한 아이의 부모가 ‘잘 못하는 것은 무리해서 시키지 말고 놀게 하면 좋겠다’고 요구했다”며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도 자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지도하는 학부모가 적잖다”고 전했다.

창의적 인재는 잘하는 일에 집중한다?


적잖은 교육전문가는 “부모들이 ‘창의성 교육’에 대해 오해하면서 초등생들이 나약해지는 현상이 심해졌다”고 분석한다.

칭찬하고 기를 살려주는 것이 자녀를 창의적 인재로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이런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잘하지 못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게 하고, 잘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지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은 “고학력자가 많은 요즘 초등 학부모들은 과거 부모세대와 달리 자녀의 잘못을 보고 자신이 개입해 바로잡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는 자녀가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르게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개입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수정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면 결국 쉽게 상처받고 회복력이 약한 아이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단 외면하는 초등생도 적잖다.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선 단원평가를 마치면 교사가 채점해서 나눠준 시험지에 적힌 점수를 보이지 않게 접거나, 찢거나, 지우개로 지우는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 많다.

이 학교의 D 교사는 “85점을 받은 아이가 점수를 접어놓아서 ‘왜 그러니’라고 물으니 ‘이번엔 실수를 많이 해서 그래요’라며 시험지 자체를 다시 보길 피했다”며 “100점이면 성공,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기보단 쉬운 문제를 풀고 100점을 받으며 만족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잘못되면 부모·사회 탓?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초등생도 늘고 있다. 초등 교사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자신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보완하고 성장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한다.

경지지역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은 E 교사가 미술시간만 되면 침울해지는 여학생에게 무엇을 도와줄지 묻자 “자신은 미술을 잘할 수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학생은 “집에서 도와줄 상황이 안 되어서 미술학원에 갈 수도 없고, 친구들이 가진 디지털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태블릿PC도 부모님이 돈이 없어서 사주지 못해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 교사는 “친구들끼리 싸우게 될 경우 양쪽 모두 조금씩 잘못이 있기 마련인데,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점만 생각하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부족한지 생각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며 “자신이 무엇을 못하는 이유를 경제적,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이야기하는 학생도 적잖다”고 전했다.

임영주 임영주부모교육연구소장은 “평소 어려운 일을 부모가 해결하는 데 익숙한 아이는 부모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문제가 잘못되면 자신의 탓이 아닌 부모의 탓으로 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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