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파벌 싸움의 희생양인가… 무한 경쟁속 기회 잃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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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수 러 귀화까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화목했던 시절 안현수(왼쪽)와 이호석이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딴 뒤 웃고 있다. 서울 신목고 1년 선후배 사이인 둘은 태릉선수촌에서 룸메이트로 지낸 ‘절친’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2개월 뒤 세계선수권 때는 이호석이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동아일보DB
화목했던 시절 안현수(왼쪽)와 이호석이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딴 뒤 웃고 있다. 서울 신목고 1년 선후배 사이인 둘은 태릉선수촌에서 룸메이트로 지낸 ‘절친’이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난 2개월 뒤 세계선수권 때는 이호석이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동아일보DB
《 소치 겨울올림픽에는 71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출전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2연패를 노리는 김연아, 올림픽 무대를 처음 밟은 ‘빙판 위의 우생순’ 컬링 여자 대표팀 등…. 하지만 관심은 온통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에게 쏠려 있다. 인터넷에서는 난리다. 파벌 싸움으로 얼룩진 한국 빙상계가 세계적인 선수의 앞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안현수가 한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택했다는 것이다. 》

2년 넘게 걸린 재활 안현수가 2008년 9월 양쪽 다리의 근육 밸런스를 맞추는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안현수는 이해 1월 국가대표 훈련 중 무릎뼈가 수직으로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당초에는 재활까지 최대 3개월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네 차례의 수술을 거치며 재활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IB스포츠 제공
2년 넘게 걸린 재활 안현수가 2008년 9월 양쪽 다리의 근육 밸런스를 맞추는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 안현수는 이해 1월 국가대표 훈련 중 무릎뼈가 수직으로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당초에는 재활까지 최대 3개월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네 차례의 수술을 거치며 재활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IB스포츠 제공
○ 파벌 다툼 있었나?

파벌 논란이 불거진 건 안현수가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건 두 달 뒤였다. 2006년 4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남자 3000m 슈퍼파이널 결승에서 사달이 났다. 안현수가 앞서 가던 오세종과 이호석을 추월하는 과정에서 신체접촉으로 오세종은 중심을 잃었고, 이호석은 넘어졌다. 1위로 달리던 이호석은 결승선 골인을 한 바퀴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호석은 5위에 그쳤고, 안현수는 실격됐다. 오세종은 동메달을 땄다.

경기 직후 ‘파벌이 나뉜 한국 선수끼리 과잉 경쟁을 벌이다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안현수는 당시 한국체대를 다니던 일명 ‘한체대파’였다. 동두천시청과 경희대 소속이던 오세종과 이호석은 ‘비한체대파’였다. 이들은 같은 대표팀이었지만 서로 다른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서로 대화도 없었고 밥도 따로 먹었다.

안현수는 당시 한 선배의 미니홈페이지에 “같은 시간에 운동해도 말 한마디 없다”고 썼다. 이호석은 “만일 같은 팀 선수였다면 그렇게 무리한 레이스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안현수는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며 개인 종합 1위에 올랐다.

○ 짬짜미(순위 담합) 논란

2006년 4월 당시 대표팀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안현수의 아버지와 대한빙상경기연맹 임원 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아버지는 안현수가 오세종과 이호석 때문에 레이스에 방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호석의 어머니는 “안현수가 이성을 잃고 애를 그냥 밀어버렸다. 형이 돼 갖고 세계 1위가 그게 할 짓이냐”고 반박했다.

말싸움은 짬짜미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국 대표 선수가 결선에 2명 이상 뛸 경우 한 선수가 1위로 나서면 나머지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의 추월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이 되는 데는 이 같은 짬짜미 작전이 큰 역할을 했다. 대표팀 출신의 한 코치는 “쇼트트랙은 원래 그런 종목이다. 대표팀이 늘 하는 작전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과거 TV 해설가들도 한국 선수들이 결선에서 1, 2, 3위를 달릴 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국 선수들이 서로 막아줘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었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도 짬짜미 작전을 하고 있다.

○ 안현수는 파벌 싸움의 희생양?

안현수는 고교생이던 2002년 1월 국가대표로 뽑혀 한 달 뒤 열린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 나갔다. 그는 2001년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뽑히지 못했었다. 2002년 1월 춘천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를 눈여겨본 당시 전명규 대표팀 감독이 그를 발탁했다. 대표 선발전에서 뽑힌 이재경이 부상당하자 대신 안현수를 선발한 것이다. 당시 쇼트트랙계의 주류이던 한국체대를 나온 전 감독은 현재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다. 안현수는 파벌 논란이 불거진 2006년 4월 이후에도 무릎 부상을 당한 2008년 1월까지 계속 국가대표로 뛰었다.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 2개를 따내며 개인 종합 1위에 올랐다.

○ 국가대표 선발전 시기 왜 바뀌었나?

세계선수권 종합 5연패를 달성한 안현수는 2008년 4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지 못했다. 같은 해 1월 대표팀 훈련 중 무릎을 다쳤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부상 후유증으로 9위에 머물렀고, 2010년 9월 선발전에서도 18위에 그쳤다.

2010년 또 한 번 논란이 빚어졌다. 당초 4월에 열리기로 돼 있던 국가대표 선발전이 9월로 미뤄지면서다. 빙상경기연맹이 안현수를 대표팀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선발 시기를 일부러 늦췄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된 안현수는 2010년 5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기초 군사훈련 이후로 미뤄지는 바람에 리듬이 깨진 안현수가 불이익을 봤다는 얘기다. 빙상경기연맹은 “당시 선발전을 미룬 것은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불거진 대표 선수의 승부조작 문제와 관련한 국회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발전을 연기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안현수는 왜 러시아로 귀화했나?

안현수가 지금까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귀화 이유는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나 환경적인 부분들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안현수는 2010년 12월 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소속 팀까지 잃었다.

이후 혼자 훈련하면서 2011년 4월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했다. 안현수는 2011년 2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월 대표 선발전에서 반드시 (대표팀에) 복귀해 소치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현수는 4명을 뽑는 선발전에서 6위를 해 대표팀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는 2011년 9월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로 생활할 때부터 러시아 측과 얘기가 오갔었다. 하지만 그때는 소속팀(성남시청)도 있고 군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아 확실한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뒤 소속팀이 없어지고 군대 문제도 해결되면서 고민 끝에 귀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한국체대 졸업을 앞두고 있던 2007년 12월 계약금 2억 원을 포함해 3년간 총액 5억 원을 받기로 하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역대 국내 쇼트트랙 선수 중 최고 수준의 대우다. 이 때문에 소속팀을 잃은 안현수를 다른 팀에서 선뜻 데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 후 러시아 대표팀 코치 자리까지 제안하는 등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이종석 wing@donga.com / 소치=이헌재 기자
#소치 겨울올림픽#안현수#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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