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기술자, 막일꾼이 일구는 정겹고 진솔한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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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시집 ‘신강화학파’

강화도에서 진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시집 ‘신강화학파’를 낸 하종오 시인. 도서출판b
강화도에서 진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시집 ‘신강화학파’를 낸 하종오 시인. 도서출판b
‘강화학파의 한 사람이라는 자는 한마디 더 하고 휴대폰을 끊었다/선생이 시인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남을 살펴보는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데라면/어디든 이주할 작정하고 있던 나는/이십여년 만에 서울 떠나/강화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속내를 알아차렸다/오래 전에 머물렀던 자리에 머물러야 눈이 밝아지는 나이였다’(‘강화학파 첫 인사’ 중)

하종오 시인(60)의 강화 노래가 시집 ‘신강화학파’(도서출판b·사진)에 담겼다. 시인은 1990년대 중반 강화도에서 홀로 기거하며 시를 쓰던 시기가 있었는데, 최근 20년 서울 생활을 벗어나 가족과 강화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시인은 조선 후기 양명학자들이 강화도에 모여들어 형성한 강화학파에 착안해 신강화학파를 상상한다. 고전적 엘리트 집단이던 강화학파와 달리 신강화학파는 농부, 기술자, 막일꾼 등으로 꾸려진다. ‘세 사람이 찾아와 신강화학파라고 자기 소개했다/동막리 산다는 사람은 삼백두 살 농부라 했고/외포리 산다는 사람은 이백다섯 살 기술자라 했고/국화리 산다는 사람은 백열세 살 막일꾼이라 했다’(‘자칭 신강화학파’ 중)

강화의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지는 못해도 강화의 햇빛과 바람에 대해 잘 알고 그 자연적 본성과 어울리며 허명을 구하지 않고 진솔하게 살아가므로 그들이야말로 강화도의 주류라고 시인은 말한다. 조립식 주택을 짓고 남은 자투리 땅 다섯 평에 텃밭을 일구고 이웃이 건네준 호박씨 한 움큼과 쪽파를 심기도 하고, 고추 모종은 언제 심어야 할지 몰라 다른 집을 엿보려고 동네를 서성이는 시인의 일상도 정겹다.

‘저마다 다른 길 돌아다닌/신강화학파가 집으로 돌아가면서/비로소 한 방향 바라보고/나도 집으로 돌아오면서 같은 방향 바라보면/강화 구석구석 농사일 마친다’(‘해질녘의 신강화학파’ 중)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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