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10>투자심리까지 바꾼 개인정보 유출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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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경제금융연구소의 루이지 구이소 박사팀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큰 수익보다 작은 수익에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밝혀냈다. 돈의 흐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충격 탓에 사람들이 위축돼서다. 여기까지는 상식에 부합하는 결과다.

흥미로운 대목은 공포영화를 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공포영화를 원래부터 좋아하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실험 대상자들이 호러 영화를 관람한 직후 “큰돈을 벌 기회가 있어도 그냥 작은 수익에 만족하겠다”고 답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다양한 유형의 공포가 사람들의 투자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공황 같은 경제위기뿐 아니라 쓰나미나 무력 충돌 같은 비경제적 경험들도 사회 전반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를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면 최근 우리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공포영화 한편을 단체 관람한 셈이다. 집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같은 기본 정보에다 주민등록번호와 신용등급 같은 고급 정보까지 탈탈 털리자 내 통장에서 언제든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불안이 팽배해지면서 집단공포에 빠진 것이다.

전화를 이용한 보이스 피싱, 문자메시지로 자동결제를 유도하는 스미싱, PC에 악성코드를 설치해 사기사이트로 이동시키는 파밍, 조직 내 특정인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스피어 피싱 등으로 전자금융 사기는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의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보라, 내가 힘들여 일해서 번 돈이 사기에 노출될 수 있는데 안전한 은행에서 돈을 움직여 투자할 마음이 나겠는가.

어쨌든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다지만 실제 시행되려면 몇 개월,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 결국 개인 스스로 안정장치를 해야 한다.

첫 단계는 포털, 쇼핑몰, 게임 등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퍼뜨려놓은 내 정보에 자물쇠를 튼튼히 채우는 것이다.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사이트마다 비밀번호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내가 가입한 사이트가 20곳은 되는데, 이 비밀번호를 어떻게 다 외우나? 비밀번호를 어디에 적어뒀다가 잃어버리면 더 큰일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개인정보보호 종합지원 포털(www.privacy.go.kr)에 유용한 팁이 나와 있다. 개인이 가입한 모든 사이트에 공통적인 기본 문자열을 설정한 뒤 사이트별로 규칙을 정해 다른 문자열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기본 문자열을 3470으로 정했다면 사이트 명칭 알파벳 첫 두 글자를 비밀번호로 한다든지, 아니면 짝수 번째 문자를 쓰겠다고 정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yahoo.com의 비밀번호를 정할 경우 기본문자열을 3470으로 하고 사이트 명칭 알파벳 첫 두 글자를 채택할 경우 비밀번호는 ‘3470ya’가 되는 식이다. google.co.kr의 비밀번호는 ‘3470go’가 된다. 어떻든 자기만의 고유 숫자를 정한 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정해놓으면 잊어버릴 경우 다시 기억해낼 가능성이 높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보이스 피싱에 대한 대비책도 있다. 일단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가급적 빨리 끊어라. 현혹되기 쉽다. 또 출처가 불분명한 스마트폰 메시지는 열지 말라. 특히 문자메시지에 연결돼 있는 주소는 절대 클릭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자동 결제 기능이 작동해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스미싱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PC방, 도서관 등 공용으로 사용되는 컴퓨터에서는 인터넷 뱅킹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를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 저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카드회사를 통해 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은 2차사고 발생에 대비하라. 본인 이름, 계좌번호, 주소 등이 유출된 경우에는 이 정보들이 포함된 정교한 가짜 메시지가 올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해야 한다. 카드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신용카드 사용 명세 문자메시지(SMS)서비스’를 신청하는 게 좋다.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결제 명세를 통보받을 수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위험하지 않은 투자는 없다. 공포감을 걷어내지 않으면 마비돼 버린 이성의 기능을 되찾지 못한다. 그러면 투자에 나설 때인지, 어디에 투자할지 판단할 수 없다. 개인정보 유출 공포가 지속되면 은행 적금 말고는 어느 금융상품도 거들떠보지 않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탄탄한 만큼 지금이 투자에 나설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공포감을 먼저 걷어내는 사람이 투자의 세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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