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 큰 용단” 생색… 양보 외치며 더 큰 대가 노릴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산상봉 예정대로 진행]
고립 탈피 위해 관계개선 속도전… “앞으로 잘해보자” 사실상 보상 요구
南측 신뢰프로세스 설득 통해 ‘靑-통일전선부 만남’ 정례화 가능성

13일 0시경 1차 남북 고위급 회담 성과 없이 종료→12시간 만인 13일 낮 12시 북한, ‘오후 3시’ 회담 제의했으나 한국이 ‘14일 회담’ 역제의→북한, ‘14일 오전 10시’ 회담 수용→14일 회담 전체회의 40분+수석대표 접촉 10분+종결회의 25분→총 1시간 15분 논의 만에 ‘이산가족 상봉행사 예정대로 진행’ 합의.

북한이 이처럼 하루 만에 태도를 사실상 180도 바꿨다. 1차 고위급 회담에서 한미 연합군사연습(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 연기를 주장하고 그 기간에 이산가족 상봉행사(20∼25일)를 못 연다던 북한이 왜 뒤늦게 고개를 숙인 걸까. 북한 전문가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위한 전략전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관측했다. 예정됐던 행사(이산가족 상봉)를 뒤늦게 트집 잡은 뒤 원래대로 하기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한국 정부는 “이른바 ‘외상 상봉’이란 있을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 ‘양보의 모양새’가 필요했던 북한

북한 측 수석대표인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이번 회담의 의미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진솔하게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국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렇게 진지하고 진솔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많다. 한 관계자는 “북한은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남북관계 개선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적, 외교적 고립이라는 난국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한국에 극적으로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향후 남북관계 현안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대남전략일 가능성이 있다. 1차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뒤 북한 측 대표단이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개성에서 평양의 훈령을 받아 태도를 바꾸는 모양을 취한 것도 이번 합의가 ‘김정은의 통 큰 양보’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은 12일 1차 회담에서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한이 양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그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현 제1차장은 14일 브리핑에서 “남북 합의에는 어떤 조건도 붙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남북대화에서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양보해줬으니 한국도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한국은 “대통령 마음이니 믿어라”

한국 측은 고위급 회담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이해시키고 남북관계의 진전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임을 북한에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차장은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중시한다. 흩어진 가족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은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통령의 마음이니 믿으라”고 설득했다. 원동연 부부장은 “대통령이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니 믿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차장은 사후 브리핑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북한도 ‘그러면 그렇게 얘기하니까 한번 믿어보자’는 차원에서 합의를 했다”고 말했다.

○ 청와대-통전부 회담 굳어지나

남북은 이날 서로의 관심사를 협의하기로 하면서 조만간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다시 열기로 했다. 이 회담에서 성과가 나올 경우 청와대-통일전선부 간 이른바 ‘박근혜-김정은의 대리 만남’이 정례화 또는 상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남북 간 상시대화 채널 구축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국정과제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남북 고위급 회담의 정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 간 실무접촉 수준으로는 남북관계의 포괄적 진전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규현-원동연 채널’이 남북관계 개선의 진전 속도에 따라 더 높은 급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북한을 상대하는 이런 식의 ‘첫 단추’가 과연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북한#이산가족상봉#남북고위급회담#이산상봉#통일전선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