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최근 10여년간 佛 문화-정치 조명한 ‘보보 공화국’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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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 얼간이들, 사고칠 줄 알았어”
동네북 신세 된 ‘프랑스판 강남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여배우 쥘리 가예의 염문설이 터지자 영미권 언론은 이른바 ‘프랑스 때리기(France bashing)’에 기세를 올렸다.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대통령이 스쿠터를 타고 애인을 만나러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은 선정적 소재임에 틀림없다.

‘프랑스 때리기’의 기저에는 ‘보보 때리기’가 자리 잡고 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블링블링한’ 삶을 살았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달리 ‘보통 대통령’을 표방해 당선에 성공한 올랑드 대통령을 프랑스 보보의 대명사로 보기 때문이다.

보보는 2000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첫 두 글자를 합성해 만든 조어 보보스(bobos)의 프랑스어 발음이다. 부르주아의 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문화적 풍요를 함께 누리는 신엘리트층을 말한다.

프랑스의 언론인 출신 작가 커플인 로르 와트랭과 토마 르그랑이 펴낸 ‘보보 공화국(La Republique BoBo)’은 지난 10여 년간 프랑스 문화와 정치, 미디어 담론을 이끌어왔던 보보에 대해 분석한다. 프랑스의 보보는 파리의 생제르맹 대로나 마레 지구와 같은 부유한 지역에 살면서 최신 유행의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지닌 이들을 말한다. 보보는 강경좌익 성향의 ‘보보보’(부르주아 보헤미안 볼셰비키), 친환경주의를 선호하는 ‘바이오 보보’로 분화했다.

보보는 요즘 프랑스 정치권에서도 동네북 신세다. 우파들은 보보에 대해 “1980년대 사회당 정권 때 ‘캐비아 좌파’의 완벽한 현신”이라고 비판한다. 올랑드 대통령,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 새 여자친구 가예는 물론이고 탈세 의혹으로 물러난 제롬 카위자크 전 예산장관을 비롯한 현 프랑스 내각의 장관 대부분이 보보라는 것. 동성애자와 이민자에 대해 동질의식을 가진 보보는 극우주의 급부상에도 책임이 있다고 공격받는다. 좌파들도 보보에게 ‘혁명을 흉내 내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분노가 체제 전복적이라고 확신하는 특권층 얼간이들’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이런 ‘보보 때리기’ 시대에도 보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진정한 ‘보보스러움’이란 현 시대 모순점의 양극단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멋스러운 시크함과 서민적 정서, 개인주의와 이타주의, 혼자 살기와 함께 살기, 부르주아 규범과 보헤미안의 여유…. 이들은 파리 도심의 부자 동네에 사는 보보보다 교외 지역에서 임시직 노동자나 다인종과 함께 사는 보보에 주목한다. 경제적 자본보다 더 높은 문화적 자본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며,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면서도 이웃 및 세계와 관계를 맺을 줄 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당분간 정치적 영향력은 쇠퇴할 수 있어도, 보보의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보보#로르 와트랭#토마 르그랑#보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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