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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출신도 우즈베키스탄 출신도 한국 이름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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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출신도 우즈베키스탄 출신도 한국 이름은 ‘새×’

동아일보입력 2014-02-14 03:00수정 2014-02-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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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1부>나는 동네북이 아닙니다
외국인 근로자 언어폭력 피해 실태, 23개국 178명에 물어보니
“아, 그 새×, 농땡이 엄청 부리네. 너 새× 내가 지켜보고 있어. 너만 봐도 너희 나라가 왜 가난한지 견적이 나와.”

내 한국 이름은 ‘새×’다. 캄보디아에서 불리는 진짜 내 이름을 아무리 알려줘도 소용없다. 반장도 공장장도 사장도 모두 새×라 부른다. 내 키가 165cm라서 그런가? 아니면 피부가 까매서?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고 키도 비슷한 한국인 동료는 ‘김 씨’다.

며칠 전 허리를 삐끗해 고철 나르기가 버겁다. 허리가 너무 아파 잠시 쉬려고 앉았더니 담배를 피우고 돌아온 반장이 소리 지른다.

“일하는 꼬락서니 봐라. 너 결혼했다고 했지. 너 같은 새×도 부인이 있냐. 한국 중학생보다 힘 못 쓰는 새×가 그래도 남자 구실은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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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듣는 욕이지만 아내를 들먹이는 데는 참기가 어렵다. 8개월 전에 그만둔 직장에서도 아내에 대해 욕을 하기에 그만둔 터였다. 하지만 이번만 참아 보기로 했다. 실직자로 지내며 가족에게 돈을 못 부치던 3개월이 지옥보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만 참으면 캄보디아에 있는 8명의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래, 참자….

9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 A 씨(38·철강주조업체 근무)가 지난해 말에 있었던 일이라며 털어놓은 내용이다. 2년 전 A 씨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은 ‘새×’. 처음에는 상대방을 부르는 단어인 줄 알았지만 고국 동료들이 알려줘서 욕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A 씨는 “‘부모가 무식하니까 네가 무식한 것 아니냐’, ‘그렇게 살다가 네 자식도 그렇게 된다’처럼 가족을 욕하는 말을 듣거나 ‘가난한 나라는 이유가 있다’는 식의 막말을 들을 때 가장 힘들다”라고 말했다.

○ 10명 중 6명 막말 들어

외국인 근로자가 없는 국내 산업현장은 상상하기 힘들다. 전국 약 323만 개 중소기업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업을 꺼리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면 공장을 돌리기 힘든 곳이 많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피부색이 다르거나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혹은 한국말이 서투르다는 이유로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157만여 명으로 최근 10년 새 2배로 늘었다. 이 중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외국인이 각각 24만6000여 명, 24만여 명에 달한다. 관광취업, 단기취업 비자를 가진 외국인을 더하면 한국에서 취업한 외국인은 55만 명 정도다.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된 외국인 근로자들의 폭언 경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경기 안산시, 이천시, 평택시, 인천 소래포구, 서울 종로구 일대 외국인 근로자 178명(2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응답자의 62.4%(111명)가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언어폭력을 처음 경험한 시기는 빠르게는 한국에 온 직후부터였다. 언어폭력 유경험 외국인 근로자의 44.2%(49명)는 한국에 온 지 일주일 안에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이들은 “웃는 낯으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욕을 하는 한국 사람이 신기할 지경”이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B 씨(38)는 “3년 전에 첫 출근을 했던 날, 퇴근길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술에 취한 무리로부터 ‘아이고, 외노자(외국인 근로자)님들 돈 좀 벌었냐? 왜 우리나라 돈을 너네 나라에 갖다 주냐, 병×들’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친구가 의미를 알려줘 욕인 줄 알았는데, 그 일주일 동안 비슷한 욕을 10번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욕을 듣는 빈도도 높았다. 언어폭력을 당해 본 111명 중 64.0%(71명)는 일주일에 1∼7회 막말을 듣는다고 응답했고 14.4%(16명)는 50회 이상이라고 답했다.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C 씨(41)는 “한국 동료와 상사들은 부인하고 싸웠을 때, 자식이 속을 썩일 때, 혹은 그냥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한다”며 “한국 욕이 워낙 익숙해 고국 친구들이 모여도 스리랑카어 대신 ‘×발, 개새×’ 같은 한국어로 욕을 하며 상사 험담을 한다”고 했다.

○ 민간 외교관 만드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필요

막말을 들어도 외국인 근로자는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절대적인 ‘갑(甲)’의 위치에 있는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에게 대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막말을 들어 본 111명 중 63.1%(70명)는 욕을 들어도 ‘대응하지 않고 참는다’라고 했다. 노동단체에 알린다(1.8%), 회사 상사에게 알린다(5.4%)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인 D 씨(33)는 “이슬람교를 믿어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회사 상사는 ‘너희가 고기를 안 먹어 힘이 없고, 그래서 가난한 거다’라고 말한다”며 “애초에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데 뭘 어떻게 대응하라는 것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욕을 먹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업무 능력보다 업무 외적인 이유로 폭언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는 외국인 근로자의 37.0%(41명)는 자신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폭언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일을 못해서 욕을 듣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9.0%에 불과했다.

태국인 E 씨(29)는 “회사 매출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공장장은 외국인 근로자들 앞에서 ‘이 병×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애들을 쓰다 보니 우리 회사도 가난해지네’라는 말을 하곤 한다”고 했다.

말로 비수를 꽂는 한국인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진다. 한국에서 욕설을 듣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 중 한국이 싫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욕설을 들은 이들은 15.3%가 한국이 싫거나 매우 싫다고 했다.

김원경 한국외국인인력지원센터 상담팀장은 “말 한마디로 인해 한국 사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외국인들이 등을 돌린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라며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한국의 훌륭한 민간외교관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최선재 인턴기자 건국대 법학과 4학년


#외국인 근로자#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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