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원택]지역정당 물꼬 터야 지방자치 경쟁 생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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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당, 나름 참신하지만 민주당 지지기반과 겹쳐 있어
非호남권엔 별다른 반향 없어… 당공천 폐지만 볼게 아니라
중앙정치 대리전 양상 벗어나 지역 현안을 놓고 논쟁해야
진정한 지방자치 이룰 것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방선거를 향한 정치권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당내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야권에서도 연대 여부 등을 두고 신경전이 날카롭다. 분주해진 정치권과는 달리 대다수 유권자들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여전히 무관심한 듯이 보인다.

이처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특히 지방선거의 경우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당내 경쟁이 선거의 당락을 의미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지방선거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우리나라의 지방정치는 경쟁 없는 일당지배 체제의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이 최근 신당 창당을 추진하며 경쟁에 뛰어든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신당이 성공한다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지역적 독점 구도를 깨고 실질적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가능성은 제한적인 듯하다. 신당이 ‘모든’ 유권자에게 대안(代案)으로 간주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신당은 진보 및 일부 중도 유권자, 젊은 세대, 그리고 호남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 결국 신당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호남 등 일부를 제외한 유권자들에게 지방선거는 여전히 실질적 대안이 없는 경쟁이 되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정당 공천 폐지 주장의 근거도 경쟁 없는 지방선거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정당 공천을 받으면 사실상 당선을 보장 받기 때문에, 후보자는 공천권을 가진 정당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당 공천 폐지로는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새로운 문제점도 낳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기초단체장 후보의 인지도는 대체로 낮다. 솔직히 필자도 그간 지방선거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 출마한 구의회 의원 후보는 물론 구청장 후보도 누가 누군지 잘 몰랐다. 내게 그들을 비교하고 평가하게 해 준 것은 소속 정당이었다. 정당 공천이 사라지게 된다면 1991년 지방선거에서처럼 영남에서는 1번 후보가, 호남에서는 2번 후보가 유리해지는 코미디 같은 일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한 정당 공천 없이 당선된 구청장이나 군수가 재임 중 그 지역을 망쳐 버리고 다음 선거에 안 나온다면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소속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정당 공천 여부가 아니라 지역적으로 한 정당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문제의 해결은 지역 수준에서 대안적 경쟁 세력이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간의 경험에서 보듯이, 전국 수준에서 새로운 정당의 등장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안철수 신당에서도 보듯이 반응 역시 지역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앙정치의 개입 없이 지역 수준에서 새로운 대안이 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컨대 전남에서 새누리당은 실질적 대안이 아니며, 경북에서 민주당도 비슷한 처지다. 그러나 이들 각 지역에서 환경운동, 시정감시운동, 문화운동 등을 펼쳐온 단체들이 연합해서 새 정당을 만들고 지역사회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는 인사들이 참여하게 된다면, 이 정당은 지역 유권자에게 수용되는 대안세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정당 공천 폐지론자들이 비판해 온 지방정치의 중앙정치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아니라 지방의 어젠다(의제)를 중심으로 한 진정한 정치적 논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에 한해 지역에 기초한 정당의 출현을 허용하도록 정당법의 일부 규정을 고치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이런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지역주의에 기초한 양당의 기득권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정당 공천 폐지 논쟁은 본질적인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변죽만 울리고 있는 꼴이다.

최근 들어 비정상의 정상화가 자주 이야기되지만,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나라에서 지역 수준에서는 실질적 경쟁 없는 일당지배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것보다 비정상적인 일은 없다. 공허한 정치적 논쟁보다 지방정치의 비정상적 상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angwt@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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