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웅 “대한항공은 내 인생 마지막 기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2월 13일 07시 00분


■ 대한항공 세터 강민웅 스토리

삼성화재 동기 유광우에 밀려 트레이드
한선수 빠진 대한항공 주전세터로 발탁
절실함 무기로 우리카드와 3위 싸움 지휘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이 2-2 트레이드를 결정하던 날은 1월17일.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세터 강민웅(29)을 불렀다. 대한항공이 시즌 전부터 탐을 내오던 선수.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춰본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쉬운 선수였다. 그러나 포기해야 했다. 강민웅의 앞으로 인생이 더 중요했다. 2007∼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수련선수로 입단했다. 열심히 노력했다. 성실성은 감독도 알았다. 입단 초기에는 최태웅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동기 유광우에 치였다. 상무도 다녀왔지만 현실적으로 강민웅에게 돌아갈 자리는 없었다. 데리고 있어봐야 팀의 2인자였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유광우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강민웅에게 또 그림자 역할을 해달라고 하기에는 인간적으로 미안했다. 그래서 신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이번이 네게 마지막 기회다. 나이를 생각해서 주전으로 뛸 기회가 있는 팀으로 보내준다.”

다음날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대한항공 선수로 첫 출발한 날. 강민웅은 야간 훈련을 마치고 신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한선수가 빠진 이후 세터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팀. 강민웅은 기회를 봤다. 29세.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지만 운동선수에게는 뭔가 결단을 내려야할 때였다. 일반인 기준으로 본다면 적지 않은 연봉이었지만 FA선수로 수억 원을 벌어들이는 동기나 앞으로 남은 선수생활 기간 등을 감안한다면 급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기량이 있을 때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였다.

세터는 특수보직이다. 한 번 주전이 되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강민웅은 삼성화재에서 수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주전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행운은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말 그대로였다. 1월23일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LIG손해보험과 경기를 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수없이 다짐하며 코트에 섰다. 이 날을 위해 그동안 수십만 번 토스를 했는지도 모른다. 긴장했지만 침착 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대한항공 공격수들이 편하게 대해줬다. 가능하면 선수들이 쉽게 때릴 수 있게 공을 올려주려고 했다. 배분하는 토스에 강민웅은 없었다. 승리와 헌신만 생각했고, 혼을 담았다. 결과는 3-0 승리.

그날 이후 그는 대한항공의 주전세터가 됐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1월30일 삼성화재전에서 유광우와 맞대결을 했지만 1-3으로 졌다. 2일 현대캐피탈전에는 문성민의 스파이크에 맞아 눈을 다쳤다. 잠시 눈이 안 보였지만 이겨냈다. 훈련 때 더욱 노력했다. 동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먼저 다가섰다. 공격수마다 원하는 구질과 코스 스피드가 달랐기에 그것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11일 한국전력 경기 때는 먼저 첫 세트를 내주고도 3-1로 역전승했다. 이제 우리카드와 3위 싸움에 탄력이 붙었다. 그동안 보조세터로만 경험했던 봄 배구를 주전의 자리에서 직접 해볼 기회도 가까워졌다.

‘세터는 팀의 어머니’라고 한다. 5년간 선수들에게 익숙했던 밥상을 차려주던 한선수가 떠난 뒤 대한항공은 3명의 세터를 투입해가며 실험을 했다. 그 과정은 힘들었다. 3명의 새어머니를 받아들인 집안의 아이들과 같았다. 고전동화에서는 새 어머니가 아이들을 구박하는 스토리가 많지만 강민웅이 땀으로 쓰는 스토리는 전혀 새로운 버전이다. 대한항공은 정말로 좋은 새어머니를 얻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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