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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교회, 추억의 사랑방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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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교회, 추억의 사랑방 됐어요”

동아일보입력 2014-02-12 03:00수정 2014-02-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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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춘선 금곡역 역사 그대로… 교회 예배당 만든 박영환 목사
“쉬다 가세요… 하나님 사랑은 덤”
5일 경기 남양주시 옛 금곡역 성시교회 앞에서 박영환 목사(가운데) 가족과 ‘팝 잉글리쉬’ 동호회 회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폐역에 들어선 이색 교회가 입소문을 타면서 금곡역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철도 동호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남양주=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야트막한 언덕 위에 기와지붕과 붉은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 서 있다. 건물 앞에 서니 삼각 지붕에 매달린 붉은색 테두리의 하얀색 십자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래 기차역 ‘금곡역’ 간판이 붙어 있다. 이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문 입구에 ‘성시교회’라고 쓰여 있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박영환 담임목사(58)는 들어오길 망설이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예수님 믿으란 소리는 절대 안 해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쉬다 가세요.”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의 옛 경춘선 금곡역은 폐역이 됐다. 3년여간 방치됐던 이 역사는 지난해 11월 교회로 바뀌었다. 폐역이 교회로 변신한 첫 사례다.

예배당 안에는 옛 기차역 맞이방에서 썼음 직한 목탄난로가 따뜻한 온기를 내고 있었다. 화장실 안내판 같은 각종 표지도 옛 기차역 것을 그대로 썼다. 벽에는 1000여 권의 소설, 에세이, 종교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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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목사는 2006년부터 7년간 금곡역 인근 대형 상가 건물에서 목회를 했다. 그는 “꼬마들이 ‘똥침’을 놓고 장난도 칠 수 있는 격이 없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지만 상가 교회에는 예배가 없으면 신자들이 잘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눈에 폐역이 들어왔다.

“역사를 교회로 바꾸면서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려고 노력했어요. 간이역에서 사람이 쉬었다 가듯 누구나 차 마시며 책도 읽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폐역이 된 금곡역은 한때 10대 비행 청소년들의 차지였다. 유리창은 죄다 깨졌고 담배꽁초와 술병,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박 목사는 “교회로 바뀐 뒤에도 청소년들이 역 주변에 찾아오곤 했다. 처음에는 아지트를 빼앗겨 기분 나빠 하더니 컵라면을 끓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니 누그러졌다”고 했다.

교회에선 매주 ‘팝 잉글리쉬’ 회원들이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 이날 만난 회원 5명 중 이 교회 신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영원 씨(56·여)는 “일요일에는 성당에 나가고 주중에 영어 노래를 배우러 여기 온다”고 말했다.

역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어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 경춘선 전철을 타러 오기도 한다. 철도 동호회 엔레일 회원 엄광섭 씨(50)는 “금곡역은 남양주 시민에겐 출퇴근 장소였다. 교회가 우리의 추억을 지켜주니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속도 경쟁에서 밀려난 기찻길에는 봄이면 더 느린 자전거도로가 들어설 예정이다. 수많은 자전거족을 두고도 전도의 의무를 참을 수 있을까. “그저 쉬었다 가면서 은은한 하나님 사랑을 느끼고 간다면 그걸로 족해요.”

남양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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