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인증이 뭡니까” 용어 차이에 막혔던 개성공단 인터넷 협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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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려가며 대화… 남북 通했다
기술체계도 달라 전문가들 진땀 “차이 이해하고 좁히는게 통일준비”

지난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개성공단 3통(통행·통신·통관) 분과위원회 통신 분야 남북 실무협의. 개성공단에 남북한 인터넷을 연결할 때 사용자 인증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남북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남측 대표단=사용자가 컴퓨터 웹 페이지상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웹 인증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인증을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설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측 대표단=그럼 포털 인증 방식으로 하자는 말입니까?

남측은 북측이 ‘인터넷에 접속한 뒤 사용자에게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 화면에서 사용자를 인증하는 방식이냐’고 물었다고 생각했다.

▽남측=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게 아닙니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전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는 화면을 말합니다.

▽북측=그게 바로 포털 인증 방식 아닙니까?

남측 대표단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측 대표단은 이런 대화를 수차례 나눈 끝에 비로소 한국의 ‘웹 인증방식’과 북한의 ‘포털 인증방식’이 같은 뜻임을 깨달았다. 북한은 포털을 한국과 달리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하기 위해 거치는 첫 관문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사용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이 7일 개성공단 인터넷 연결방식에 합의할 때까지 지난해 11월부터 10여 차례 만났다. 처음 서너 차례는 협의를 마치고도 북한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용어를 썼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남측 대표단은 인터넷 연결‘망’을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 제공자(ISP)로 KT를 소개했다. 그러나 북한은 ISP를 인터넷 연결망뿐 아니라 사용자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종합 제공하는 총체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10년을 끌어온 개성공단 인터넷 연결 문제를 3개월 만에 합의하면서 남북은 인터넷 관련 용어와 기술체계가 서로 판이하게 다름을 비로소 확인했다. 남북은 어려운 용어 설명 대신 인터넷 연결 구성도처럼 서로 그림을 그려 주고받으며 협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로 사용한 용어의 뜻이 같은지 반드시 확인했다. ‘말보다 도면이나 손짓 몸짓의 언어(보디랭귀지)를 사용해야 의미가 확실히 전달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말의 차이를 좁히자 협의도 급진전됐다고 한다. 이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처음엔 남북회담이라는 점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꼈지만 서로의 용어를 이해하며 견해차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남북 인터넷 연결방식 합의 과정은 남북한 간 이질성이 얼마나 크며 이를 해결하는 남북한 통합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관계자는 “교통 보건의료 사회 법률 교육 과학기술 역사 심리 등 모든 일상 분야에서 남북한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해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통일 준비”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웹 인증#개성공단#기술체계#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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