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고이즈미 극장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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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없는 도쿄도서 “탈원전” 호소… 경제-복지 중시한 유권자에 안통해
아베 우경화-원전 재가동 탄력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71·사진) 전 일본 총리의 ‘극장 정치’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패전 후 3번째로 긴 5년 5개월 동안 총리를 지낸 그는 화려한 연기를 하듯 정치를 해 ‘극장 정치가’란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9일 치러진 일본 도쿄(東京) 도지사 선거에서 그가 총력을 기울여 지지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76) 전 총리 후보는 3위에 그쳤다.

‘고이즈미 돌풍’이 불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정치 스타일 ‘원 이슈 돌파형’ 때문이다. 이는 선거전에서 한 가지 테마를 집중적으로 내걸어 국민적 지지를 얻는 식이다. 2005년 9월 총선 때 그는 연설의 81%를 우정 민영화에 집중시키며 개헌 가능한 의석수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대승(327석)을 거뒀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선 연설의 85%를 ‘탈(脫)원전’에 쏟았다.

하지만 도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원전이 아니었다. 도쿄 도 안에 원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도민들은 원전을 ‘시급한 이슈’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65) 전 후생노동상의 당선 이유에 대해 “경제나 의료 복지에 대한 호소를 (유권자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했다”고 자평했다.

신선미도 떨어졌다. 호소카와-고이즈미 조합은 전직 총리를 지낸 ‘거물’들의 연합이었다. 하지만 70대 거물은 젊은 세대에게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사히신문 출구조사 결과 호소카와 후보는 20, 30대에서 각각 11%, 15%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주요 후보 4명 중에서 최하위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했다. 9일 자필로 발표한 소감문에서 “아쉬운 결과지만 앞으로도 ‘원전 제로’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미력하나마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60) 총리가 직접 나서 유세를 벌일 정도로 전폭 지지한 마스조에 후보가 도쿄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집단적 자위권 허용 등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 방침을 담은 중장기에너지정책 지침 ‘에너지 기본계획’을 이르면 이번 달 안에 내각회의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에너지 기본계획에 대해 “실현 가능성과 균형성을 고려하겠다”고 밝혀 각의 통과 의지를 내보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고이즈미#아베 우경화#원전 재가동#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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