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치에서 실종된 차기 겨울올림픽 개최국의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치 겨울올림픽 불참에 대해 “올해 정부 업무보고를 비롯해 국내외 업무가 많이 밀려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발표도 잡혀 있어 부득이 방문하지 못했다”고 어제 해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긴밀한 정상외교를 펼치는 동안 박 대통령은 뭘 했느냐는 눈총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4년 뒤 평창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박 대통령이 소치에 갔더라면 차기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각국의 협조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소치 개회식엔 세계 각국에서 60여 명의 정상급 인사가 참석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 정상들이 불참하는 바람에 참석자들은 더 깍듯한 대접과 주목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래세대에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심각한 범죄들을 알려줘야 한다”며 중국 편에 섰다. 쿠릴 열도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베 총리에겐 “문제를 빨리 해결해 평화협정을 맺자”고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중-일 정상은 국내 일을 제쳐 두고 소치를 찾은 성과가 있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내에선 지난해 한-러 정상회담이 두 차례 열린 것을 들어 “왜 우리만 빠졌냐고 하는 건 사대주의적 발상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니 안타깝다.

선수들이 뜨거운 경쟁을 벌이는 한편에서 치열한, 그러면서도 격의 없는 외교전이 벌어지는 무대가 바로 올림픽이다. 이번 대회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북한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내 푸틴 대통령, 시 주석을 면담했다. 동북아의 역사, 영토,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놓고 러시아 중국 일본이 외교력을 집중한 자리에 한국만 빠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불참했고, 문대성 IOC 선수위원만 참석해 스포츠 외교무대에서도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 올림픽 때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개회식에 참석했다. 그 직후인 8월 말 후진타오 주석이 서울을 찾아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전략적 협력 파트너 관계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박 대통령의 참석이 정 어려우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이 전 대통령이나 정홍원 총리가 대신 참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좋은 기회를 놓쳤다.
#소치 겨울올림픽#박근혜 대통령#정상외교#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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