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출판 표준계약서, 작가-출판사 모두 윈윈 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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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별로 안 싸워서 지켜보기 심심했죠?”

7일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건물에서 열린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만난 한 참석자가 공청회가 끝난 뒤 기자에게 건넨 말이었다.

이날 공청회는 출판물 저작자의 권리 확대를 골자로 하는 가칭 ‘백희나 표준계약서’의 시안을 출판계 인사들 앞에 공개하고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4000억 원이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 문화 콘텐츠인 ‘구름빵’의 원작자인 어린이 그림책 작가 백희나 씨가 불리한 계약 때문에 2차 콘텐츠의 저작권료를 한 푼도 못 받은 사실을 고발한 동아일보 보도를 계기로 김기태 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가 책임을 맡아 연구한 표준계약서 시안이었다.

이 시안에 대해 저작자 측인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출판사 측인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패널들이 상대측의 주장만 반영됐다며 볼멘소리를 할 걸로 예상했지만, 정작 공청회에서는 일부 조항의 해석에 대한 지적과 수정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뿐 전반적으로 시안을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지금까지는 못했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달 말까지는 표준계약서 최종 문안 수정을 거쳐 최종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계약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요술방망이가 될 수 없다. 저작자와 출판사의 이견이 드러난 대목은 일단 절충적인 문구로 정리돼 사후 다툼의 여지가 남아 있고, 상당수 민감한 대목은 특약을 통해 정하도록 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2차 저작물에 대한 원작자 권리 보호 조항이나 창작 대가 지급 절차의 투명화 조항 등이 대거 포함돼 제2, 제3의 구름빵 사태를 예방할 최소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계약서의 빈칸을 채우는 일도, 계약서에 적힌 약속을 이행하는 일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저작자의 권리 존중 없이는 훌륭한 콘텐츠를 얻을 수 없고, 독불장군식으로 내 권리만 고집해서는 좋은 책을 만들어 줄 출판사를 잃는다는 자명한 진리를 출판사와 저작자 모두 깨닫지 못하면 어렵게 만든 표준계약서도 생명 없는 한낱 종잇장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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