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힘내라 소치 전사들… 후배-선배-가족의 응원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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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에 나간 선수만큼 가슴을 졸이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 가족처럼 친한 이들이 그렇다.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36)의 고려대 후배인 ‘역도 여제’ 장미란(31), 여자 쇼트트랙 심석희(17)의 아버지 심교광 씨(51), 프리스타일 모굴스키 최재우(20)의 멘토인 ‘뜀틀의 신’ 양학선(22)이 소치의 태극전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

● 올림픽 6회 출전만으로도 오빠는 나의 영원한 챔피언

장미란이 빙속 이규혁에게

오빠, 소치는 어때?

소치로 떠나기 전 함께 밥 먹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회 출전일(10일)이 다가왔네. 아프다던 허리가 괜찮아졌는지 걱정이야. 그래도 개회식 때 기수로 태극기를 들고 당당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 다 나은 것 같던데.

소치 올림픽에 나가는 오빠에게선 2년 전 런던 올림픽에 나갈 때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러워. 몸은 아픈데 내색은 할 수 없고, 후배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마지막이라는 부담감도 크고.

그래도 항상 밝고 쾌활한 오빠는 대단한 것 같아. 남들은 한 번도 나가기 힘든 올림픽을 여섯 번이나 나갔으니까. 나도 서른 살에 은퇴했는데 나보다 훨씬 먼저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오빠는 아직도 선수잖아.

그러고 보면 우리가 친해진 것도 참 신기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후 태릉선수촌 물리치료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눈 뒤 친해졌잖아.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왜 밥도 먹고 연락도 주고받는 걸까. 오빠는 날 꽉 막혔다고 생각하고, 난 오빠를 철없다고 생각하잖아. 그래도 오빠는 항상 나한테 말하지.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전혀 꿀릴 게 없어도 세계선수권 5번 우승한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나는 들어 올리는 종목(역도)이라 부상에 발목이 잡혔지만 오빠는 스케이트를 타니까 그냥 휙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부담 없이 타면 오빠의 숙원인 올림픽 메달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아.

나랑 대화를 하고 나면 항상 마음속에 불이 붙는다고 했지. 그 불을 가슴에 안고 후회 없는 경기를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까지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도할게. 오빠는 올림픽 6회 출전만으로 내 마음속의 챔피언이야.


내 기술 비슷한 3바퀴 회전, 눈밭에서도 꼭 펼쳐주렴


양학선이 모굴스키 최재우에게

재우야, 많이 떨리지?

오늘(10일)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첫 올림픽 무대에 서는구나. 출전이 확정됐을 때 전화를 걸어 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가 처음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 보자마자 “형, 점프 잘하는 비결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묻던 네 모습이 기억난다. 그땐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스러웠어. 나중에 네가 모굴스키 선수라는 것을 알고 나처럼 점프에 목숨 건다는 것을 알고 웃음이 났다. 알다시피 나는 직접 개발한 세 바퀴 비틀어 돈 뒤 정면으로 착지하는 ‘양학선’ 기술로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어. 너도 내 기술과 비슷한 1080도 회전으로 메달을 꿈꾸고 있는 것 잘 알아. 형이 얘기했지? 점프 뒤 몸을 트는 것보다는 미리 몸을 돌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그 뒤로 점프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들었어. 밤늦게 점프에 대해 질문할 때는 귀찮기도 했지만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알겠더라.

같은 학교(한국체대) 다니면서도 자주 밥을 사주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너한테 연락해 밥 먹자고 하는 것 알지? 첫 올림픽이라 긴장이 많이 되겠지만 부디 다치지 말고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 얻길 기대할게.

참, 나는 런던 올림픽에서 경기를 마친 뒤 다른 종목 선수들의 경기를 보거나 친하게 어울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어. 너는 다른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다른 종목 경기도 보러 가길 바라. 재우야. 잘하고 와서 보자.
대견하고 안쓰러운 막내야, 좋아하는 떡 많이 싸갈게

쇼트트랙 심석희 아버지가 딸에게


벌써 보고 싶네, 우리 막내딸.

지난달 네가 프랑스로 전지훈련을 떠날 때 공항에서 잠깐 보고 벌써 3주가 흘렀구나. 네가 전지훈련지에서나 러시아 소치에서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하니 마음은 든든하다. 아빠도 너에게 자주 연락을 하고 싶지만 부담을 줄까 봐 그러지 못하겠구나.

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쇼트트랙에 재능을 보여 좀 더 좋은 지도를 받기 위해 서울로 전학 가야 했을 때 아빠는 참 힘들었단다. 고향인 강릉을 떠나는 것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도 아빠에게는 큰 도전이었어. 그래도 네가 어떻게든 쇼트트랙 선수로 크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의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바라봤는데 그보다 4년이나 빨리 기회를 잡았잖니. 악바리 같은 너의 성격과 노력 덕분이지만 5년 전 강릉을 떠날 때만 해도 아빠는 이렇게 빨리 세계 정상권으로 올라갈 줄 몰랐다.

아빠는 우리 딸이 자랑스럽지만 미안하기도 하구나. 또래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생활 제대로 하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눠야 하는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만 하는 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조만간 아빠가 소치로 갈 수도 있단다. 경기를 직접 보며 응원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는구나. 네가 좋아하는 떡도 싸갖고 갈게. 어렸을 때부터 유독 떡을 좋아하지 않았니.

아빠는 네가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웃었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금메달이 아니라 노력했다는 사실 아니겠니. 석희야, 사랑한다.

김동욱 creating@donga.com / 소치=이헌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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