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병원비 무서워 무단 퇴원도… 결국 기초수급자로 전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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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못하는 선택진료제]난치병 앓는 환자-가족의 눈물

“태아가 심장이 좋지 않습니다. 선택을 하셔야겠습니다.”

동네 산부인과 의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2011년 여름 주부 김지은(가명·43) 씨가 임신 5개월일 때였다. 초음파 검사를 했더니 아이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법적으로는 아이를 지울 수 있는 상태였다. 김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 무조건 아기를 낳겠다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대학병원에서 2주에 한 번씩 아이 심장만 관찰했어요. 그런데 막상 낳고 보니까….”

김 씨가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딸 소희(가명·3)는 출생 직후부터 계속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폐동맥판 폐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김 씨 부부는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를 꼬박꼬박 지불하면서 지금까지 1억 원의 빚을 졌다. 그는 아이를 낳은 것은 후회하지 않지만 진료비 명세서를 볼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김 씨는 “말이 선택이지 선택진료와 상급병실을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아이의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강요된 선택’도 선택인가

김 씨는 “동네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에게 이상이 있다는 소견서를 주면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다”며 “출산 직후 아기가 중환자실로 직행해야 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신생아 심장병 치료를 할 수 있는 대학병원에서 태아 관리를 받으며 출산 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를 낳을 때쯤 담당 의사는 심장소아과 교수를 소개해줬다. 아이가 태어나면 심장병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아이의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있는 교수는 1, 2명에 불과했다. 모두 선택진료 의사. 물론 선택진료비를 내야 한다. 김 씨는 “당연히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있는 분으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선택하고 말고 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예상대로 중환자실로 직행했다. 낳고 보니 심장병뿐 아니라 기도폐쇄까지 앓고 있었다. 곧바로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는 되지 않았다. 폐동맥이 폐쇄되어 수술로 인조 혈관을 집어넣었지만 폐에는 가래가 계속 끼었다. 자주 가래를 뽑아주지 않으면 숨도 못 쉬었다. 그대로 두면 생명이 위험해질 상황. 김 씨는 아이에게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날 때마다 대학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다. 담당 교수에게서 진료를 받을 때마다 선택진료비가 나왔다.

아이가 태어난 뒤 김 씨는 계속 아이 옆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가래를 뽑아주고 산소기를 대주는 것은 의사의 몫이었지만 가래가 떨어지도록 온종일 등을 두드려주는 건 부모 몫이었기 때문이다. 산모 혼자서 계속 아이 곁에 붙어서 돌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김 씨의 남편도 몇 개월간 일을 쉬면서 간호를 해야만 했다.

아이는 지난해 1월 심장수술을 받았다. 진료비 총액은 8571만7487원.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주는 금액을 빼고 김 씨 부부가 부담한 돈은 1966만3766원. 이 중 1314만2840원은 상급병실료 차액(환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병실료)이고, 352만6626원은 선택진료비였다.

부부가 일을 못 하다 보니 빚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병원을 오가면서 아이의 진료비에만 약 7000만 원이 들었다. 벌이는 없고 병원비와 생활비를 지출하다 보니 없던 빚도 1억 원이나 생겼다. 시동생이 병원비를 1000만 원 정도 보탠 적도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 전 다행히 남편이 일을 시작해 월 200만 원 정도를 벌지만 언제 빚을 갚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급병실

2009년 크론병(만성적으로 재발하는 원인 불명의 염증성 장 질환)을 확진 받은 김현준(가명·37) 씨는 늘어나는 비급여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확진받기 전까지만 해도 요리사로 일했다. 20대 초반부터 속이 좋지 않아서 동네병원을 찾았지만 오랫동안 염증치료제만 처방 받았다.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입맛이 없고, 먹은 음식의 대부분은 대변을 통해 빠져나갔다. 빈혈기가 심했고 설사도 자주 했다. 결국 동네병원 의사는 “궤양성 대장염 같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간 뒤에야 크론병을 확진 받았다.

크론병을 진료하는 의사는 선택진료 의사뿐이었다. 그는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증상이 악화될 때마다 길게는 일주일에서 보름씩 입원을 했다. 매번 입원을 하러 가면 6인실엔 늘 자리가 없었고 1, 2인실에 입원했다가 병실을 옮겨야 했다.

진료비가 무서워 무단 퇴원을 한 적도 있다. 첫 수술을 받고 입원했던 2009년이었다. 원무과에선 당시까지 상급병실료를 포함해 진료비가 3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진료비를 감당할 형편이 되지 않아 그날로 병원을 나와 버렸다. 다음 날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병원 복지과에 찾아가서 사정을 말한 끝에 공익재단을 소개받았다.

김 씨는 전에는 회사를 다녔지만 병에 걸린 뒤에는 하루 종일 일하기가 어려워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다. 하지만 매달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씩 나오는 비급여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2012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막노동을 하는 형과 단둘이 살고 있다. 진료비가 많이 나올 때마다 종종 형에게 손을 벌리지만 형도 돈을 보태줄 형편은 안 된다. 더욱 답답한 것은 크론병은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평생 병원을 오가며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

비급여 진료비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환자들은 병원 사회복지 담당부서를 통해 공익재단을 수소문하고 진료비를 지원받는다. 김지은 씨 가족과 김현준 씨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2년간 600만 원을 지원 받아 진료비에 보탰다. 하지만 부담은 여전히 크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선택진료제#난치병#기초생활수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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