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英 여장부, 날마다 다른 길로 출퇴근 이유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 자유를 간절히 원하고 주장해야 민주주의가 당연한 것이 된다. ―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김이재·위즈덤하우스·2014년) 》

이 책은 땅에 새겨진 인간의 무늬와 자연의 무늬를 다루는 한국의 여성 지리학자가 쓴 영국 여성들의 운명 개척기다. ‘우아한’ 영국의 여성들이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에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까지 어떤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주목한다.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디자이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다른 길로 출퇴근한다. 변화하는 런던을 피부로 느끼면서 말이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전거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런던이라는 도시. 이곳은 웨스트우드의 첫 번째 스승으로 손색이 없다. 웨스트우드의 스승은 또 있다. 바로 런던의 박물관이다. 고졸 학력의 웨스트우드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전시실과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디자인 영감을 키웠다. 디자이너 웨스트우드는 이 박물관의 자식이나 다름없다.

웨스트우드의 어머니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맨체스터 인근에서 불붙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딸의 성적표를 보지 않았고 공부 스트레스도 주지 않았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웨스트우드는 ‘해적이 되기를 꿈꾸는’ 천방지축 여장부로 성장했다. 그런 기질은 오늘날 영국 정부와 영국 여왕, 미국 등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웨스트우드의 ‘펑크’ 캐릭터를 키워냈다. 웨스트우드의 세 번째 스승은 참정권 세대인 엄마다. 히피로 성장한 웨스트우드는 1968년 파리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두 아이를 남겨두고 파트너 맬컴과 함께 혁명을 좇아 떠났다. 파리는 웨스트우드의 네 번째 스승이 될 법하다.

‘자유를 간절히 원하고 주장해야 민주주의가 당연한 것이 된다’는 말은 웨스트우드의 역사 선생이었던 스콧이 한 말이다. 웨스트우드를 비롯해 이 책에 실린 영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결국 유리 천장에 갇힌 한국 여성들을 위한 ‘지리적 처방’이다. 이 시대를 한창 풍미하고 있는 ‘심리적 처방’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볼 만하다.

박유안 번역가
#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여장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