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눈앞의 ‘디지털 바보’만 보지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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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미셸 세르 지음/양영란 옮김/163쪽·8800원/갈라파고스
◇지식의 미래/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이진원 옮김/368쪽·1만8000원/리더스북

원하면 언제든 네트워크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모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모두에게 들리는 확성기를 갖게 된 세대가 만들어 갈 지식과 제도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리더스북 제공
원하면 언제든 네트워크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모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모두에게 들리는 확성기를 갖게 된 세대가 만들어 갈 지식과 제도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리더스북 제공
만 세 살 난 아들 녀석이 거실에 걸린 TV 화면에 손을 대고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스마트폰 사진첩처럼 TV 화면도 손 터치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게다. 스마트폰과 TV, 컴퓨터로부터 비교적 ‘청정하게’ 아이를 키웠다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루 24시간 스마트폰으로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신문이나 책, 펜보다 모니터와 마우스 터치스크린이 훨씬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저 아이들이 맞이할, 그리고 만들어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의문에 답을 해 주는 책 두 권이 나왔다. 프랑스 한림원 회원인 철학자 미셸 세르(84)의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갈라파고스)와 미국 하버드대 ‘인터넷과 사회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데이비드 와인버거(64)가 쓴 ‘지식의 미래’(리더스북)다.

‘엄지세대’가 대륙 철학 특유의 사색과 직관이 강하게 묻어나는 에세이라면 ‘지식의 미래’는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영미식 대중 학술서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인류가 겪고 있는 디지털혁명이 가져다줄 미래상을 낙관적인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의 궤를 함께하는 책이다.

‘엄지세대’는 양손 엄지로 스마트폰에 빠르게 글을 써 넣는 것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신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한국에선 ‘엄지족’이란 말로 더 익숙하다. 저자는 신인류인 엄지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으로 ‘인식 기능의 외부화’를 꼽는다. 검색어만 넣으면 엄청난 양의 글과 그림을 꺼내 쓸 수 있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사실상 두뇌의 인식 기능을 대체했다는 것. 덕분에 이들은 과거에 ‘능력’으로 여겨졌던 암기력이나 계산술을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에 맡기고 지식 그 자체로부터 멀어지면서 대신 혁신적이고 경쾌한 직관 능력과 창조적 지능을 얻게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는 통념에 대한 통쾌한 복수다.

이런 변화는 낡은 지식의 세대에 종언을 고하고 지식의 민주화를 가져와 종국에는 현재의 낡은 대의정치 시스템도 항시적 참여와 공개적 토론으로 대치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팔순을 넘긴 저자가 18세가 돼서 엄지세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이들 엄지세대가 만들 미래를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미래’는 이런 관점을 공유하면서도 지식 인프라의 변화, 더 구체적으로는 네트워크화가 지식의 형태에 가져온 변화를 분석하는 데 주력한다. 와인버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의 양상과 이미지가 인쇄매체에 발표한 사실이 권위를 가졌던 ‘고전적 사실의 시대’와 방대한 사실 축적이 중요했던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된 사실의 시대’를 지나 하이퍼링크로 네트워크화된 ‘인터넷 시대’를 거치며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네트워크가 적절한 지식의 조각들을 연결지어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탄생시키는 일종의 창조발전소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침몰 유조선(엑손 발데즈 호) 속 기름을 회수하는 골치 아픈 문제를 정유업자나 공학자가 아닌 시멘트 전문가가 풀어낸 사례를 예로 들며 네트워크화가 고전적 의미의 전문가도 아니고 해당 분야와 무관한 사람들을 잠재적 전문가로 만들어 낼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기술 결정론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와인버거는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소통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보다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확신을 더해주는 일종의 메아리 동굴(이 책은 ‘반향실’이라고 부른다) 같은 고립된 커뮤니티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미국의 정치적 이슈를 대하는 보수-진보 진영과 진화론-창조론자들이 가상공간에서 보인 행태를 이런 사례로 드는데, 이는 ‘일간베스트’나 ‘일간워스트’처럼 파편화된 한국의 인터넷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네트워크의 확장이 진실의 풍요만큼이나 거짓의 풍요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해답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를 멍청하고 편협하게 만드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이 질문에 담긴 도전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위기가 아닌 축복으로 만들 조건과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 절실하다는 얘기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엄지세대#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지식의 미래#스마트폰#TV#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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