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지방자치가 중앙정치로부터 자유로우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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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미국에서 40여 년 살다 귀국한 지인을 만났다. 그분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 시(市)에서 시의원과 시장을 지냈다. 시의원 8년에 시장도 2년 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이 일하던 시 정부의 형태가 재미있었다.

시 의회 의원만 주민들이 뽑고 시장은 시 의회에서 간선을 하는 식이다. 시의회 의원은 5명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세비로 지출되는 돈이 적을 뿐 아니라 거의 무보수 명예직이다. 시장의 임기는 1년이고, 전문적인 행정은 선임 행정관(Manager)을 채용하여 그 사람에게 맡기는 형태다.

세계의 지방자치 형태 가운데 이러한 유형을 ‘위원회(commission)’ 형태라 한다. 정당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주민 중심의 생활정치를 하고, 소수의 의원들만 뽑아 세비의 지출을 대폭 줄이는 형태다. 미국과 독일은 건국 때부터 이런 위원회 형태를 포함해 네 가지 자치 형태를 보유해 왔고, 영국도 2000년부터 결국 네 가지의 자치 형태를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한국에서는 기초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야당은 기초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의 폐지를 주장하고, 여당은 위헌 소지를 들어 정당공천의 유지를 주장한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요구는 분명하다. 공천을 둘러싸고 불법헌금을 받아 챙기는 부패를 예방하고 중앙정치가 지방자치를 압살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라면, 지방자치의 비용을 줄이라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전자를 대변하는 야당은 정당공천의 폐지를 주장하고, 후자를 거론하는 여당은 대도시 기초의회의 폐지를 제시한다.

탈정치화와 비용 절감이 국민의 엄정한 요구라는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 단계에서 여야가 택해야 할 길은 명백하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는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의 공약이기도 했거니와, 여당이 위헌 소지의 근거로 내세우는 2003년 헌법재판소 판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그때 헌재의 판결은 정당의 ‘공천’을 대상으로 했던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정당 ‘표방’ 자유에 관한 것이었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정당공천을 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만병통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2018년 선거부터는 자치의 다양화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면 인위적이고 획일적으로 공천을 금할 필요도 없다. 획일적으로 시장과 시의원을 뽑아 대결토록 할 것이 아니라 네 가지 형태 중에서 택할 수 있게 해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주민과 상관없이 정치싸움이나 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고 막대한 세비 지출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은 위원회 형태를 택하면 된다.

위원회 형태는 수십 명 혹은 100여 명씩 지방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경영자, 깨끗한 정치인, 시민운동가 등 4∼7명의 위원을 뽑아 지방의회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가 적기 때문에 자치의 비용이 크게 줄고, 이들이 간선으로 1년씩 단체장직을 수행하게 되어 단체장의 독선도 불가능해진다. 20세기 초 미국도 지방자치의 정치화와 부패로 골치를 앓았는데 위원회 형태를 도입하여 해결한 바 있다.

아마 네 가지 형태를 우리나라에 허락해도 가장 많은 지역에서는 지금처럼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따로 뽑는 기관분립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화를 통해 획일적 정당공천이나 공천금지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고, 자치의 비용을 아끼려는 주민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야당은 단순한 공천 폐지의 주장을 넘어 폐지가 내포하는 효과의 한계를 주목하기 바란다. 새누리당은 공천 유지를 궁색한 논리로 주장할 게 아니라 발전적 대안으로 승부하기 바란다. 국민의 요구는 명백하다. 지방자치를 부패와 중앙정치의 사슬에서 끊는 동시에, 자치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약해 달라는 것이다. 자치의 다양성을 허용하고 그 선택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면 해결이 된다. 네 가지 자치 유형 중 주민들이 어떻게 알고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대통령도 국민이 선택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한들 지금보다 나빠질 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정당공천#부패#중앙정치#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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