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형의 기웃기웃]인간의 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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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가족들과도 오랜 친구들과도 떨어져 긴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는 나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 얘기 저 얘기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한국말로 수다 떠니까 너무 신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의 눈가가 조금씩 촉촉해져 갔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다 보니,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더 그리워진 거다. “며칠 전에도 엄마랑 통화하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자꾸만 울게 된다고 했다. 가족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자꾸만 울게 된다고. “엄마 아빠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어. 왜 그런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막 없던 힘도 생기면서 행복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아픈 걸까?”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는 후배의 눈. 그 눈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꾸만 나는 또 다른 눈 하나가 떠올랐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 그는 인간이 아니다. 그에게는 마음이란 것도 없어 보인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아픔도 없어 보인다. 그저 호기심만이 있을 뿐. 그래서 그저 지켜만 본다. 인간들을, 인간들의 세상을 그저 무심히 바라만 본다. 어떤 만화 속 주인공인 그. 그가, 한 사람을 아주 오랜 시간 관찰하게 되었다. 늘 그랬듯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계속 궁금했다. 그 사람의 다음 장, 다음 장이 계속 계속 궁금해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그 사람 곁에 머물게 됐던 그. 그런데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 인생의 마지막 장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으니까. 그 마지막 장을 펼치려 방문을 열고 나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던, 어른도 아이도 아니었던,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란 것 또한 없었던 그는, 그 눈빛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괴로운 거구나.”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아픔도 없던, 그래서 그저 무심해 보이기만 했던 그의 눈이, 나는 처음으로 슬퍼 보였다. 무척, 아파 보였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후배의 눈에서 그의 눈이 떠올랐던 이유. “너무 이상하잖아. 사랑하면 행복해야지, 왜 아프냐고.”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후배가 안쓰럽고 안타깝기보다는… 부러웠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은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사랑을 하면 걱정이 많아지고, 걱정이 많아지면 아파지는 마음. 그러니 인간의 마음은 그것이 도리어 당연한 거 아닐까? 아픈 것. 아파야 하는 것. 어쩌면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더이상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지 않다는 것은 걱정이 없다는 것, 걱정이 없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해서든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는 것, ‘그 무엇’도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 내 안에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사라졌단 얘기일지도 모르니까.

*이 글에 등장하는 만화는 ‘불가사의한 소년’입니다.

강세형 에세이스트
#인간#마음#사랑#불가사의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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