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소기업에 ‘갑질’하는 은행, KT 자회사에는 3000억 사기대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내로라하는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대출사기를 당했다. KT 자회사인 KT ENS의 간부급 직원 김모 씨는 협력업체 N사 등과 짜고, 가짜 외상매출채권을 만들어 금융회사 17곳으로부터 3000억 원을 대출받게 해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하나은행이 1624억 원, 농협과 국민은행이 각각 296억 원, 14개 저축은행이 나머지를 내줬다.

소규모 네트워크 사업자인 KT ENS의 간부가 2008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100여 차례에 걸쳐 매출채권을 위조했는데도 은행들은 몰랐다고 주장한다. 자산이 100억 원도 안 되는 협력업체들에 거액을 대출해준 것도 그렇다. 외상채권을 발행한 것이 KT 자회사이니 무슨 문제가 생기겠느냐는 안일한 태도다. 하나은행 측은 희대의 사기 사건이 드러난 지금도 “협약서상 은행은 보상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금 회수에는 문제없을 것”이라며 여유 있는 반응을 보였다.

중소기업들에는 ‘갑질’하는 은행이 KT 같은 대기업 간판에는 얼마나 약한지 이번 사건은 잘 보여준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이 16개 은행의 서민금융 지원 활동을 평가해 5등급으로 성적표를 매긴 결과 4등급(미흡)과 5등급(저조)을 받은 은행이 여섯 곳이나 됐다. 중소기업들은 대출 한번 받으려면 담보를 제공하고도 수십 가지 서류를 쓸 정도로 은행 문턱이 높아 애로를 겪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은행장들은 입만 열면 서민과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따뜻한 금융’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소기업 등 자금이 절실한 곳에 제때 자금을 공급하는 ‘경제의 핏줄’ 역할보다 앉아서 예대마진만 챙기며 쉽게 돈을 벌고, 대기업 간판에는 쉽게 사기를 당한 형국이다.

KT의 방만한 운영과 계열사 관리도 드러났다. 인감도용과 세금계산서, 인수증의 서류 조작도 6년이나 몰랐다는 KT 자회사는 이번 일이 김 씨의 개인 비리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은행과 대기업 KT의 책임 미루기로 결국 그 피해가 은행 고객과 KT 이용자들에게 돌아올까 걱정스럽다.
#은행#대출사기#KT ENS#매출채권#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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