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은 ‘김용판 무죄’ 무겁게 받아들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청장의 공소 사실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6일 ‘증거분석 결과 문재인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 또는 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음’이라는 허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의 회신을 거부 또는 지연함으로써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혐의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청장으로부터 사건을 축소하라는 등의 부당한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김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줬다. 권 씨를 제외한 다른 증인들은 모두 김 전 청장이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으며 폐쇄회로(CC)TV 및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도 이와 부합한다고 법원은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입증할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간접 증거인 권 씨의 진술만으로는 유죄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려면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다른 증인들의 진술을 배척하면서까지 권 씨의 진술만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재판부가 조목조목 지적한 무죄 이유를 살펴보면 검찰의 기소에 일부 무리한 점이 나타난다. 김 전 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고 해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도 같은 결론이 날 것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국정원 의혹에 대해서는 이 사건을 포함해 모두 4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저축은행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재판에서 잇따라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이번 판결에 대해 “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인 판결”이라며 반발한 것도 성급한 일이다. 검찰과 변호인이 팽팽하게 맞선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오로지 증거를 근거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고심(苦心)이 따랐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포함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재판에 더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남은 재판 역시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진행돼 시비를 낳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