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비만과 건강 불평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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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아파….’ 몸무게 140kg대의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어린 시절 뇌막염 후유증으로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 비좁은 아파트에서 육중한 아들을 보살피는 일은 팔순 노모의 몫이다. 아들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꼼작하지 못한 채 “엄마”만 불러댄다. 늙은 어머니는 버스비를 절약하기 위해 날마다 왕복 1시간 거리를 걸어서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밥 한 줄을 사다 먹였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접한 모자(母子)의 사연이 충격적이었다. 제작진의 주선으로 아들을 진찰한 의사는 “많이 먹어서 살찐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의 잘못된 식습관이 고도 비만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던 어머니는 자식의 끼니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과자 같은 칼로리 높은 간식을 사다준 것이 비만으로 이어졌다며 가슴을 쳤다.

▷비만율과 소득이 반비례한다는 보건복지부의 통계가 어제 발표됐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운동을 더 많이 하고 그만큼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성에게 더 뚜렷하다. 미국에서도 잘사는 곳과 가난한 지역 주민의 비만 비율은 큰 격차를 보인다. 돈 많은 사람이 체중도 많이 나갔던 시절은 지나갔다. 건강에 유익하면서 열량이 낮은 음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비만의 신화’의 저자인 폴 캠포스는 날씬한 몸을 엘리트의 절제를 나타내는 사회적 상징으로 규정한다. 비만을 놓고 일상과 일터에서 벌어지는 차별로 인해 날씬한 사람이 더 이득을 보는 사회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는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비만이 출신 계층을 낙인찍는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해 발간된 서울연구원 보고서는 부모의 소득과 학력이 낮은 가정일수록 자녀들의 비만율이 높은 이유를 패스트푸드 같은 고열량 식품을 사먹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비만, 무엇보다 아동과 청소년의 비만은 단순한 외모 상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비만#건강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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