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인해]100명씩 상봉하다가는 2만 년 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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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도 벌써 60년… 찔끔찔끔 만나선 해소 안돼
회한에 사무치는 이산가족 위해 더 많이 만나도록 유도해야
북한동포들 살리기 위한 北인권법에도 더 큰 관심을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평양을 떠나온 실향민인 부모님들께서는 어릴 적 수영하던 대동강이며 모란봉에 오르던 기억을 떠올리곤 하신다. ‘그때가 좋았지’라며 그윽이 눈을 감으신다. 북녘 땅에 남아 있었을 어머니(친할머니)며 일가친척 얘기는 애써 피하신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은 이미 체념이 돼 오랜 세월이 흘렀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적시던 1983년 ‘이산가족 찾기’의 감동도 또 다른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달 20∼25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 남북한 양측이 90여 명씩 금강산호텔과 해금강호텔을 이용한다. 지난해 추석에 만나기로 했던 설렘이 상봉 3일 전에 물거품이 되면서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려 왔을까. 그 누구 하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지 않은 가족이 없어서, 3일이 3개월이 되고, 3년, 30년, 벌써 60년이 지나고 있다.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서러움에 복받치는 그 눈물이 강이 되어 가슴에 흐른다.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꼽으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가족 중에 고향을 떠나 월남했거나 탈북자를 둔 북의 친지들은 정치범 수용소나 강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한 많은 일생을 보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지기도 한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에서도 탈북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너무나도 가슴 저미는 체험을 풀어놓는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건만 그토록 모진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탈북 과정에서 붙잡혀 북송되기를 거듭하면서도 무슨 연유로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던 것일까. 이들을 결코 막을 수 없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북한의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은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다. 약간의 보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남성들은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지만 부족한 가족들의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먼 곳의 친지들을 찾아다니거나 중국으로 월경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한 채 길거리를 배회하는 어린 꽃제비들의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북한 어린이들은 장차 통일된 한반도를 짊어질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다. 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지속될 수 있도록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인권 문제는 주로 진보집단의 주요 이슈다. 여성 권리 증진을 비롯해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보정당인 민주당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권 관련 문제에 더욱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공화당이 인권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의 군사진압으로 중국 인민들의 인권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미국은 초당적으로 인권 신장을 위한 중국의 의미 있는 조치를 요구함으로써 점차 중국이 톈안먼 사태 가담자의 석방을 비롯해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이 이뤄졌다.

‘북한인권법’은 진정성을 가져야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인권에 관한 한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웬일인지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은 침묵했다. 전 세계 보편타당한 가치로 인권 향상을 요구할 권리에 대해 민주당이 답할 차례다.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새누리당이 북한인권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지만 북한체제 붕괴를 이끌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받았다.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초당적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자주 만나야 한다.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과 이산가족 상봉 기간 일부가 겹쳐 걱정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부모 안부를 묻고 형제자매의 손을 움켜잡고 피를 토하듯 눈물을 쏟아야 한다. 가물가물해 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리움의 끈을 놓지 못해 회한에 사무치는 그 한 많은 영혼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90명 내지 100명씩 상봉한다면 2만 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 점점 고령화하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자주 만나야 한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ahnyinha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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