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상건]소치 올림픽에서 읽고 싶은 기사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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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건 인디애나대 스포츠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 박사
유상건 인디애나대 스포츠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 박사
스포츠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치 중 하나는 ‘뼈와 피가 연출하는 드라마’다. 206개의 뼈와 5L의 피로 이뤄진 인간과 인간이 맞붙어 빚어낼 수 있는 결과는 무궁무진하다. 연출 자체가 불가능한 경연을 보도하려는 스포츠 기자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가끔 ‘진공상태’에 놓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불현듯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그 무언가에 의해 먹먹해지는 순간이다. 이때 ‘영원 같은 찰나’를 맛보기도 한다. 남아 있는 한 방울의 영혼까지 불태우는 선수들을 보면서 뭉클해진다. 상상, 그 이상을 실현하는 신체에 넋을 잃게 된다.

우리는 이럴 때 ‘나만의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고 다음 날 배달될 신문을 설레며 기다린다. ‘과연 현장의 기자는 무엇을 봤고 어떻게 썼을까?’ 하버드대의 종교철학자 마이클 노백은 40여 년 전 “스포츠 기자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유산을 보존하는 수호자”라고 말한 바 있다. 확실히 스포츠 기사는 패배에 괴로워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공감하게 한다. 비루한 일상에서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완벽한 순간’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한다. 삶에 대한 통찰력을 담은 스포츠 기사를 통해 위로받고 격려받고 싶다.

소치 올림픽에서는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 세계를 품에 안은, 폭넓은 시각에서 작성된 기사를 보고 싶다.

여름올림픽 관련 기사 중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체’라는 주제로 작성됐던 외신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 기사는 장미란을 당시 출전 선수 가운데 이상적으로 발달한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선수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아마도 자국 선수만이 아닌 출전 선수 전체 명단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썼으리라.

올림픽 같은 대형 경기를 취재할 때 기자들은 언제나 ‘제한된 인원과 마감’이라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한국 선수에 관한 보도만으로도 지면은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위상과 역할을 생각할 때 국내적 관심사를 넘어 세계를 굽어보며 기사를 쓸 때도 됐다.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를 보도할 때는 아무래도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개싸움이라도 한일전이라면 흥행을 보장한다”지 않나. 아마추어 골퍼가 1913년 미국인 최초로 US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미국 언론은 일제히 ‘우리가 영국을 격침시켰다’며 흥분했다. 당시 대회에서 이 아마추어 골퍼는 영국 프로 골퍼와 우승을 다투고 있었다.

사실 기사를 쓸 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대결로 구도를 만들면 훨씬 쓰기가 편하다. 그러나 자칫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기사가 흘러갈 수도 있다. 그 같은 유혹에 빠질 때 2010년 독일에서 발표한 윤리적 스포츠 보도를 위한 지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지침에는 ‘일체의 민족적, 국수적,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차별에 저항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우정의 증진이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스포츠팬들의 달라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도 국수주의적 감정이 지나치게 배어 있는 기사는 경계해야 한다. 스포츠 기자들의 건투를 기대한다.

유상건 인디애나대 스포츠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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