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천당… 요한 바오로 2세는 배달 나가셨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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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촌-정순택 주교 서품축하식 흥 한껏 돋운 성직자들의 유머

5일 오후 주교 서품식 뒤 서울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조규만 정순택 유경촌 주교, 염수정 추기경,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왼쪽부터)가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이날 행사들에 참석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동생인 유 주교와의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두려운 직분을 맡은 동생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극구 사양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5일 오후 주교 서품식 뒤 서울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조규만 정순택 유경촌 주교, 염수정 추기경,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왼쪽부터)가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이날 행사들에 참석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동생인 유 주교와의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두려운 직분을 맡은 동생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극구 사양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제공
《 9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건한 서품식의 ‘반전’은 축하식에서 일어났다. 추기경과 주교의 유머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축하식장은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유경촌, 정순택 두 주교의 동시 서품을 ‘쌍둥이 서품’으로 재치 있게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정 추기경이 “2002년 염수정 추기경이 첫 쌍둥이 서품식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 서품식 주례를 맡았다. 복이 많은 분”이라고 말하자, 염 추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을 아느냐”며 운을 뗐다. 그러더니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어디 가든 지갑을 열어 돈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는 예의를 지킨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 등을 꼽았다.

강 주교는 이어 “여기까지는 아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도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청중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어디에 나타나도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낸 뒤 “교회와 세상이 만들어준 세속적 권위에 물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2006년 주교로 서품된 조규만 주교는 “8년 만에 ‘동생’을 봤는데 그게 쌍둥이일 줄은 몰랐다”며 영하의 날씨에도 서품식을 지켜준 신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유머 한마디를 자청했다.

“어느 주교가 천당 문 앞에서 베드로 사도의 ‘빽’으로 간신히 들어갔어요. 천당 식당에 갔더니 아무도 서빙을 해주지 않아서 주교가 이유를 물었더니 평소 봉사를 많이 안 한 주교들의 자리는 ‘셀프’라고 했답니다. 주교가 그럼 먼저 오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지금 배달 나갔다’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세상서 봉사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배달 가야 합니다.”

사제 대표로 나온 김태근 신부의 입심도 고위 성직자들에게 뒤지지 않았고, ‘성역’도 없었다. 그는 유 주교에 대해 “일찌감치 핸섬 보이로 뽑혀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식탁 보이’로 중앙 무대에 발탁된 꽃미남 신부의 원조” “어릴 때 합창단 활동으로 가수 권유를 받았기도 했다는데 노래방 가면 꼭 지갑을 꺼낸다. 그런데 나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불러야 할 노래 번호”라고 ‘폭로’했다. 정 주교에 대해서는 “군복무 경력을 조사했다. 알고 보니 기동타격대였다. 사고로 일찍 제대했는데 그때 접한 것이 가르멜 수도회에 관한 책”이라며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제가 된 인연을 소개했다.

축하식에 이어 새 주교의 가족과 동료 신부들이 참석한 축하연. 분위기가 무르익자 염 추기경이 유머를 보탰다. “(제가) 염 씨, 소금이죠. 소금도 열심히 기도하면 수정이 됩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주님 모습을 따르면 수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서품식 참석자는 “최근 가톨릭계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적 행동과 ‘어둠의 세력’ ‘심판’ 등 일부 사제들의 과격한 언어 사용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서품식에서는 두 주교의 탄생을 본 것도 축복이지만 신부님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날 장내를 가득 메운 평신도들의 박수를 이끌어낸 것은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권위를 벗은 유머와 품격 있는 언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낮춤이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김혜린 인턴기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서품식#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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