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건한 서품식의 ‘반전’은 축하식에서 일어났다. 추기경과 주교의 유머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축하식장은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유경촌, 정순택 두 주교의 동시 서품을 ‘쌍둥이 서품’으로 재치 있게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정 추기경이 “2002년 염수정 추기경이 첫 쌍둥이 서품식의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 서품식 주례를 맡았다. 복이 많은 분”이라고 말하자, 염 추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조폭’과 신부의 공통점을 아느냐”며 운을 뗐다. 그러더니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어디 가든 지갑을 열어 돈 내는 법이 없다 △서열이 확실하다 △남의 구역은 침범하지 않는 예의를 지킨다 △조직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다 등을 꼽았다.
강 주교는 이어 “여기까지는 아는 분이 꽤 있는데, 그러면 조폭과 주교의 공통점도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청중의 반응을 살피던 그는 “어디에 나타나도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고 다가서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낸 뒤 “교회와 세상이 만들어준 세속적 권위에 물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느 주교가 천당 문 앞에서 베드로 사도의 ‘빽’으로 간신히 들어갔어요. 천당 식당에 갔더니 아무도 서빙을 해주지 않아서 주교가 이유를 물었더니 평소 봉사를 많이 안 한 주교들의 자리는 ‘셀프’라고 했답니다. 주교가 그럼 먼저 오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지금 배달 나갔다’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세상서 봉사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배달 가야 합니다.”
사제 대표로 나온 김태근 신부의 입심도 고위 성직자들에게 뒤지지 않았고, ‘성역’도 없었다. 그는 유 주교에 대해 “일찌감치 핸섬 보이로 뽑혀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식탁 보이’로 중앙 무대에 발탁된 꽃미남 신부의 원조” “어릴 때 합창단 활동으로 가수 권유를 받았기도 했다는데 노래방 가면 꼭 지갑을 꺼낸다. 그런데 나오는 것은 돈이 아니라 불러야 할 노래 번호”라고 ‘폭로’했다. 정 주교에 대해서는 “군복무 경력을 조사했다. 알고 보니 기동타격대였다. 사고로 일찍 제대했는데 그때 접한 것이 가르멜 수도회에 관한 책”이라며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사제가 된 인연을 소개했다.
축하식에 이어 새 주교의 가족과 동료 신부들이 참석한 축하연. 분위기가 무르익자 염 추기경이 유머를 보탰다. “(제가) 염 씨, 소금이죠. 소금도 열심히 기도하면 수정이 됩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주님 모습을 따르면 수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서품식 참석자는 “최근 가톨릭계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적 행동과 ‘어둠의 세력’ ‘심판’ 등 일부 사제들의 과격한 언어 사용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서품식에서는 두 주교의 탄생을 본 것도 축복이지만 신부님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날 장내를 가득 메운 평신도들의 박수를 이끌어낸 것은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권위를 벗은 유머와 품격 있는 언어, 상대방을 배려하는 낮춤이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김혜린 인턴기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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