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거슈윈의 조력자 그로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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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이란 행위에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할까요. 책상머리나 피아노 앞에 앉아 선율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작곡은 단지 선율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떠오른 선율들을 적절한 구조와 형식으로 길게 펼쳐내고, 화음을 붙이고, 각 성부(聲部)를 어떤 악기들의 조합으로 연주할지 지정해야 합니다. 특히 관현악에서 악기를 지정해 완성된 악보로 만드는 기술 또는 작업을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작곡가가 선율과 형식, 화성과 오케스트레이션에 두루 능통한 것은 아닙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앨런 길버트 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피아니스트 오조네 마코토 협연으로 연주하는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도 오케스트레이션에 남의 손을 빌린 작품입니다.

거슈윈은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고 악보점이나 극장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을 익혔습니다.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야심작 ‘랩소디 인 블루’를 구상했지만 제대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현악에 일가견이 있던 다른 작곡가 퍼디 그로페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겼습니다. 1924년 발표된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로 대성공을 거두었죠.

이후 거슈윈은 관현악법뿐 아니라 화음을 붙이는 화성학도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두 번째 야심작인 피아노 협주곡 F장조는 자신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혼자 해냈습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프리스케이팅 배경음악으로 택했던 그 작품입니다. 그로페는 거슈윈이 완성한 이 작품을 재즈밴드용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거슈윈을 도왔던 그로페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미국 서부의 대자연을 묘사한 관현악 모음곡 ‘그랜드캐니언’을 발표해 주목받는 관현악 거장으로 떠올랐습니다. 대협곡의 일출과 일몰, 큰 비를 묘사한 대작입니다. 이 작품 중 특히 세 번째 악장 ‘산길을 걷다’는 계곡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나귀의 또각또각하는 발굽 소리를 묘사한 선율로 한국인의 귀에도 친근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광고나 영화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왔는데, 요즘엔 조금 뜸하군요.

유윤종 gustav@donga.com
#작곡#거슈윈#퍼디 그로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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