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기다린 배역… 내안에 글린다 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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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키드’서 착한마녀 글린다 역으로 물오른 연기 김보경

김보경은 “글린다가 입는 ‘버블 드레스’는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게가 20㎏이나 돼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보경은 “글린다가 입는 ‘버블 드레스’는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게가 20㎏이나 돼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편한 옷을 입은 것 같아요. 글린다와 제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친구들이 ‘글린다가 딱 너야’라고 말했다니까요.”

뮤지컬 ‘위키드’에서 착한마녀 글린다 역을 맡고 있는 김보경(32)은 얼굴에서 명랑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초록색 망토를 두른 채.

공연장인 서울 샤롯데 씨어터에서 만난 김보경은 무대 위 글린다 그대로였다. 데뷔 12년 차인 김보경은 “연기에 물이 제대로 올랐다” “최고의 역을 만났다”는 말을 듣는다.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이야기를 다룬다.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동명 소설을 무대에 올린 뮤지컬.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1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지난해에야 처음 선보였다. “한국에서 ‘가족 뮤지컬’은 어렵다”는 통설을 깨고 ‘위키드’는 1일 개막 두 달 반 만에 관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이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동화 속 그림 같은 무대로 어린이보다 어른을 더 사로잡는다.

김보경이 맡은 글린다는 초록마녀 엘파바와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엔 마음을 나누게 된다. 자기 자랑을 수시로 늘어놓는 공주병 기질이 있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 알고 보면 ‘허당’인 모습에 객석에서는 수시로 웃음이 터진다.

“글린다는 발레를 못하는데도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발레를 잘하는데 못하는 것처럼 연기하려니 그게 더 어렵더라고요. 하하.”

그가 뮤지컬 ‘인어공주’로 데뷔한 2003년, ‘위키드’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뮤지컬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위키드’를 정말 하고 싶었어요. 10년을 기다린 작품이에요.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차 안에서 들었을 때 온몸이 찌릿찌릿해지면서 펄쩍펄쩍 뛰고 싶었다니까요.”

‘위키드’ 오디션 때 막대 걸레에서 걸레를 떼고 꽃다발 포장지로 막대를 감싸 마술봉을 만들어 갔을 정도로 글린다 역을 갈망했다.

김보경이 배우로 이름을 알린 건 2006년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 킴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2010년 ‘미스 사이공’ 공연 때도 ‘킴’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헛구역질이 계속 나왔다. 위내시경을 해봐도 이상은 없었다.

“맡은 역할을 뼛속까지 느끼거든요. 정말로 킴이 됐죠. 엄마 아빠가 불에 타 죽고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 것, 내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가슴이 찢어졌어요.”

약혼자인 투이를 죽인 데 대해서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날 투이를 죽이는 장면에서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왔어요. 아무리 애써도 숨이 안 쉬어지는 거예요. 결국 그날 나머지 공연은 다른 배우가 대신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그 배역처럼 살기에, 밝은 역할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글린다를 만났다. 그래도 ‘위키드’의 주인공은 초록마녀 엘파바인데, 이 역에는 관심이 없었을까.

“아휴, 엘파바가 저랑 어울리나요? 캐릭터나 목소리, 외모 모두 저랑은 안 어울려요. 저는 글린다죠∼.”

‘글린다 그 자체’라는 칭찬에는 특유의 여리고 앳된 고음의 목소리도 한몫했다.

“제 목소리가 특이한 줄 전혀 몰랐어요. 하도 독특하다고들 하니까 그제야 좀 다르구나 싶었죠. 저 말고는 가질 수 없는 목소리니까 사랑스럽게 여기고 있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김보경#위키드#글린다#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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