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거꾸로 가는 ‘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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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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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얼마전 ‘로하스(LOHAS)’라는 말이 유행했다. 로하스는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머리글자 5자를 합친 말이다. 2000년 미국의 내추럴마케팅 연구소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로하스는 단어의 의미대로 건강한 삶과 환경보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생활방식을 뜻한다.

그런데 요즘은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대세다. 물론 ‘지속가능성’과 ‘환경보전’의 의미는 희석됐지만 물질적인 부(富)보다는 질적인 삶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로하스와 맥이 닿아 있다.

웰빙은 무엇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담배를 끊는 사람과 등산객이 늘어났다.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유기농 식품을 찾는 이가 많아진 것도 웰빙의 영향이다. 착한 식당을 소개하는 채널A ‘먹거리 X파일’의 인기도 웰빙 붐과 무관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은 2004년 7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 웰빙을 ‘참살이’로 쓰기로 했다. 참살이는 명사 ‘참’과 ‘생활’을 뜻하는 접미사 ‘-살이’를 결합한 신조어다.

그 참살이(웰빙)가 요즘 들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5년 내내 부자 편향, 웰빙 정당이란 소리를 들었다.” ‘웰빙 정당’이라는 말에는 ‘참살이’의 본래 의미는 없다. 잘 먹고 잘사는 사람에 대한 비아냥거림만이 담겨 있다. ‘웰빙주의자, 웰빙 체질’도 부정적 의미로 쓰인 사례다.

물론 말도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관(可觀)’이라는 말은 원래 ‘꽤 볼만하다’는 뜻이었으나 지금은 남의 언행을 비웃을 때 더 많이 쓰인다. ‘주책’이라는 말에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처럼 긍정적인 의미가 들어있음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금은 ‘주책을 떨다’ ‘주책이 심하다’처럼 거의 부정적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렇더라도 참살이와 웰빙은 나온 지 10년 안팎에 불과한 단어다. 거꾸로 가도 너무 빨리 간다. 그 배경에는 말로만 민생을 위하는 정당들에 대한 언중의 강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요번 설에는 정치 얘기조차 실종됐다는 말이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로하스#웰빙#건강#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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