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의원한테 배운 지방의원의 ‘세금 외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6일 03시 00분


3년 전 미국 워싱턴에 한국에서 온 지방의회 의원 10여 명이 도착했다. 이들의 7박 8일 미국 방문 일정에서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된 것은 의사당 앞에서 사진 찍고 의사당 건물을 둘러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국 의원들이나 의원 보좌관과의 면담 일정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들은 여행 사흘째 되는 날 전세버스를 타고 관광 명소인 나이아가라 폭포로 달려갔다. 명색이 해외 의정활동 시찰이었지 지방의원들은 처음부터 관광을 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스케줄을 짰다.

현행 안전행정부 규정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원들에게 연간 1인당 200만 원까지 해외 여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외 시찰 명목으로 미리 잡아놓은 예산을 그해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해에 불용 예산으로 처리되어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6·4 지방선거 직후에 임기가 만료되는 지방의원들이 연초부터 줄줄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서울 성북구의회 의원들이 관광성 해외 출장에 사용한 경비가 최근 주민감사 청구를 통해 환수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2000년 주민감사제가 도입된 뒤 지방의원이 해외에서 부적절하게 사용한 경비를 주민들이 나서 회수하는 것은 처음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감시와 행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성북구 주민 206명은 지난해 7월 구의원 해외여행의 적정성에 대한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지방의원들이 국민 세금을 끌어다가 해외관광에 나서는 것은 비단 성북구의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1년 2월 ‘지방의원 행동강령’을 만들어 지방의원 스스로 관광성 연수를 자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방의원들이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받으려면 ‘공무와 관련된 일’일 때만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관광을 공무로 가장하는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 지방의회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외유에 대해서도 세금 낭비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의원들이 자기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해외 의정활동 시찰#관광#지방의원#해외 여비#불용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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