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바 판매량 늘고…현금은 집안으로 숨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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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8층 가정용금고 판매점에는 금고 가격을 문의하는 고객이 드물지 않았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본점 등 14개 지점에서 최근 3개월 간 금고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1% 늘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측은 "서울 강남권의 고객 가운데 개인금고를 찾는 고객이 늘어 1년여 전부터 개인금고를 팔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요즘 고액 자산가 사이에 인기 있는 건 가정용 금고만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시세가 급락했다가 최근 다시 가격이 오르고 있는 금도 인기 아이템이다. 백화점에서는 선물용 골드바 판매량이 늘고 있다. 사설 금 매매업체인 한국금거래소 측은 "지난달 120kg 가량 팔렸던 금궤가 이달 들어 150kg 정도 팔릴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두 가지 현상은 모두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관련이 깊다. 정부가 지난 1년 간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자 고액 자산가들이 목돈이 드는 거래에 현금을 쓰거나 현금이나 금을 집안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당국이 단속의 강도를 높일수록 지하경제는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어 판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집 안으로 숨어든 현금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 원 권 지폐의 환수율은 48.6%로 2012년(61.7%)보다 1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1만 원 권의 환수율(94.6%)도 1년 전보다 12.8%포인트 하락했고, 5000원 권도 82.1%로 7.8%포인트 떨어졌다.

환수율은 일정 기간의 화폐 발행량 대비 환수량을 뜻한다. 제일 많이 쓰이는 1만 원 권의 환수율이 100% 이하로 떨어지는 건 드문 일이다. 환수율이 낮아지는 것은 현금이 시중에 나갔다가 한은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그만큼 현금 거래 또는 현금 보유 수요가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주체들의 현금 선호현상은 시중에 풀린 현금 통화량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현금 통화량(평잔)은 51조9418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0.4% 증가했다. 2011년 11월 14.3%, 2012년 11월 13.2%에서 단숨에 20% 이상으로 크게 뛴 것.

'돌아오지 않은 현금'은 집안의 금고로 숨어들었을 것으로 금융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서울 시내 대형 백화점의 금고나 골드바 판매가 크게 느는 것이 대표적인 징후다.

지난해 세금 부담을 늘리고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이 나오자 부유층을 중심으로 납세 회피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추세다. 한 증권사 세무위원은 "국세청이 세금 징수액을 결정하기 위해 현금 자산규모를 추정할 때 이자소득을 역추정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점을 이용해 수익률이 0%이거나 매우 낮은 투자 상품에 가입하는 자산가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쥐어짜면 더 숨는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공약가계부에서 5년 임기 중 모두 27조2000억 원의 추가 세수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걷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세청 관세청 등 당국이 '마른수건 쥐어짜기'에 나선 결과 일단 지난해 목표액인 2조7000억 원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과도한 징세 노력으로 인해 지하경제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기업들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 세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국세 수입이 정부 목표치보다 8조 원이 부족했고 전년도보다 줄어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금 선호가 강해지는 것은 저금리나 금융시장 불안 같은 요인도 있지만 과세당국의 '칼'을 피해 재산을 보관한 뒤 증여를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하경제를 원활히 양성화하려면 조세 저항을 줄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세무조사를 받으면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세금을 걷기 어렵다"며 "정부가 세무조사나 탈세 처벌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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