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후회없는 마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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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 부장
안영식 스포츠부 부장
어느 분야건 톱(Top)이 되긴 힘들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운도 따라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정상에서 내려오기 위해 다시 힘겨운 정상 도전에 나선 인물이 있다. 7일 개막하는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그 주인공이다.

김연아는 지난달 잇단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심경을 담담히 밝혔다. “많은 분들이 올림픽 2연패 말씀을 하시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있다. 어떤 결과든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겠다.” “18년간 매일 똑같이 훈련하다 보니 이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김연아는 할 만큼 했다. 아니, 국민들의 기대치를 초과 달성했다. 4년 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의 환희는 아직도 생생하다. 꿈(올림픽 금메달)을 이룬 그는 은퇴하고 싶었지만 후배들에게 올림픽 출전 기회를 안겨주기 위해 또 하나의 꿈(평범한 삶)을 미뤘다. 빙판에 복귀한 그는 2년간의 공백을 딛고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올림픽 출전권 3장)해 한국 여자피겨에 소치행 티켓 2장을 추가로 선사했다.

떠나야 할 때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미련 없이 은퇴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결단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약물 파문은 유혹(부와 명예)을 떨쳐버리지 못해 은퇴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인 알렉스 로드리게스(39·뉴욕 양키스)는 최근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올 시즌 전 경기 출장금지 징계를 받았다. 투르 드 프랑스를 7회 연속 우승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43·미국)은 교묘한 도핑이 발각돼 2년 전 영구 제명됐다. 두 선수 모두 정상 지키기에 급급해 추한 방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미국 LPGA투어를 호령하다가 정상의 위치에서 홀연히 은퇴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18년에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그런데 겨울올림픽의 꽃이자 하이라이트인 피겨와 아이스하키에는 개최국 자동출전권 혜택이 없어 ‘남의 잔치’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걱정이 크다. 최악의 경우 한국 여자피겨는 단 한 명도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때 또다시 김연아에게 SOS를 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실효성도 불투명하다. 여자피겨 선수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군대를 3번 가라고 강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루 8시간씩 연습했다는 김연아는 줄잡아 3만 시간 이상 투자해 세계 최고로 우뚝 섰다. ‘박세리 키즈들’은 미국 LPGA투어를 주름잡고 있다. 한국 여자피겨도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김연아가 이미 입증했다. 관건은 ‘김연아 키즈들’의 의지다.

이별은 자연의 섭리다. 시인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에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落花)/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라는 구절이 나온다. 정상에서의 멋진 피날레는 스포츠 스타들의 소망이다. 김연아는 소치 겨울올림픽이 ‘진짜 은퇴무대’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연아 선수!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후회 없는 마무리를 기원합니다.

안영식 스포츠부 부장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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