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에세이/김학록]결혼 51주년 깜짝 파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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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록 수필가
김학록 수필가
지난달 23일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51주년이 되는 날이다. 젊은 부부들처럼 야단법석을 떨 수도 없다. 아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벤트가 없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갑도 넉넉지가 않고 고를 만한 물건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니 선물로 아내를 감동시키기보다는 내 정성을 담은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준비물을 사기 위해 문방구로 향했다. 문방구에서 풍선 2000원, 색종이 1000원 등 3000원을 투자했다. 그런 다음 A5용지 3장을 길게 연결해 매직으로 ‘축 결혼 51주년 기념’이라고 썼다. 그 아래에는 우리 부부 이름을 적어 넣었다. 완성된 ‘현수막’은 벽에 걸었다.

아파트 뒤편의 싸리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잘라냈다. 그 가지를 둥글게 구부려 아치를 만들었다. 아치 중간 중간에는 색색의 풍선을 매달았다. 색종이는 1cm 간격으로 잘라 아치 둘레를 휘감았다. 그 앞에 2개의 양초에 불을 밝히고 포도주 한 병과 유리컵 2개를 나란히 놓고 보니 아주 훌륭했다.

영문도 모른 채 현관에 들어선 아내는 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감격의 눈시울을 적시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볼에 얼굴을 맞대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비록 화려한 조명도 없고 밴드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지는 않았지만 진심어린 내 정성과 성의를 아내는 짐작했으리라.

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미리 준비한 포도주를 서로에게 권하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시름을 잊고 행복한 건배를 했다. 비록 초라하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부의 애정과 신뢰, 그리고 서로의 관심을 확인했다.

여자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감동한다. 그러나 우리 남자들은 시간이 없다거나 돈이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남편들의 이런 무관심은 아내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부부란 끝없는 관심과 믿음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하며 논리로 상대를 압박하거나 제압하려고 하면 안 된다.

누구나 젊은 처녀총각으로 만났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이 황홀한 장밋빛이다. 그러나 살다보면 깊은 이해와 넓은 포용을 유지하기 어렵다. 황홀함은 사라지고 상대 단점만 보인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도 좋지만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이 들어 세상 살기가 외롭고 힘들어도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며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세상 어디에도 서로 믿고 의지할 곳이 부부 말고 누가 또 있는가. 젊어서는 아름다움과 향기에 도취되어 마냥 행복하지만 나이 들어 늙어지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성숙된 정의 향기가 매력적이다.

가정이 화목하고 평화로워야 사회도 건강해진다.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나는 지금도 그날 아내가 감동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행복감에 가슴 설렌다.

김학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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