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빚은 건축, 詩가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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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건축가 故 이타미준, 국립현대미술관서 회고전

제주의 포도호텔 이타미준이 2001년 제주에 설계한 포도호텔은 자연의 일부인 양 겸허함을 강조했던 고인의 후기 건축 세계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제주의 오름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포도송이를 연상케 한다는 뜻에서 포도호텔이라 불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제주의 포도호텔 이타미준이 2001년 제주에 설계한 포도호텔은 자연의 일부인 양 겸허함을 강조했던 고인의 후기 건축 세계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제주의 오름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포도송이를 연상케 한다는 뜻에서 포도호텔이라 불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유동룡으로 태어나 이타미준(사진)으로 살다 간 건축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준: 바람의 조형’은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준(1937∼2011)의 40년 건축세계를 ‘바람’이라는 키워드로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그는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건축을 시작했고 노년에 제주에서 대표작들을 남겼다. 시즈오카와 제2의 고향인 제주 모두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이번 회고전에 나온 그의 드로잉 스케치 회화 모형 등 500여 점을 보면 ‘바람’은 ‘자연’으로 바꿔 이해해도 될 듯하다.

‘소재의 탐색’이 키워드인 초기(1971∼1988년)는 자연과 인공의 충돌과 대립을 실험했던 시기다. 1970년대 전후로 일본에서 태동한 전위예술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영향권에 있던 때로 ‘먹의 집’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중기(1988∼1998년)의 키워드는 ‘원시성의 추구’다. 이 시기 일본 건축계에선 유리와 철을 이용한 가벼운 건축이 대세였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현대 건축에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과 건축의 야성미일 것”이라며 돌과 나무로 무거운 건축을 추구했다. ‘각인의 탑’이 대표적인 무거운 건축이다.

원시성을 추구했던 이타미준 중기의 대표작인 ‘각인의 탑’(1988년) 드로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원시성을 추구했던 이타미준 중기의 대표작인 ‘각인의 탑’(1988년) 드로잉.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격렬한 건축의 시기를 거친 이타미준은 말년에 와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매개의 건축’ 시기(1998∼2010년)다. 제주에 설계한 포도호텔은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수·풍·석(水·風·石) 미술관은 물, 바람, 돌로 쓴 시라는 찬사를 받았다.

전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이타미준의 아틀리에를 재현해놓은 공간에 들르게 된다.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의 기증품과 기억으로 꾸며놓았다. 10.8m² 좁은 공간을 채운 책상 의자 책 문구류와 공예품들은 화가이고 조선 민화 전문가이자 한국 고미술 수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낡은 ‘대한민국’ 여권에서는 재일교포의 고단했을 삶과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집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지난해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에 이은 두 번째 건축 상설 기획전으로 7월 27일까지 제5전시실(건축상설전시실)에서 이어진다. 전시 기간에 이타미준의 작품을 주제로 세미나와 강연회, 워크숍 등이 열린다. 13일 오후 2시 소강당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는 박길룡 국민대 건축학부 명예교수와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박소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발표자로 참석한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1회 열리는 건축 강연에는 유이화 대표, 박길룡 교수, 이타미준의 작품 사진과 영화를 찍었던 김용관 건축사진가와 정다운 영화감독이 연사로 나선다. 02-2188-0650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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