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운전사 딸린 렌터카, 일반인은 못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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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있는 규제 가시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 로비 입구에 번쩍번쩍하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섰다. 독일인 우즈니 씨가 전날 국내 렌터카 업체의 ‘운전자 알선 서비스’를 통해 신청한 차량이다.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운전사 박모 씨(56)는 우즈니 씨를 태우고 행선지인 서울 강남구 코엑스로 향했다.

이 서비스는 본인이 원하는 차량을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어 관광이나 비즈니스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장애인과 65세 이상 고령자를 제외한 내국인은 원칙적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한국에만 있는 ‘운전자 알선 금지 규제’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개발연구원(KDI), 기획재정부 등의 도움을 받아 취합한 34건의 ‘한국형’ 규제는 대체로 규제 입법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 반기업 정서의 산물

외국에는 없는데 한국에만 있는 한국형 규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규제에 정치적 논리가 덧씌워져 치유가 어려운 ‘규제괴물’로 전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규제를 개선하려 해도 ‘반(反)기업 정서’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일부 정치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점도 한국형 규제를 없애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 규제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수도권 내에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하지 못하도록 막는 규제다. 환경보호나 수도권의 지나친 팽창을 막기 위해 규제를 만든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지방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규제가 만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수도권 규제를 철폐하면 지방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정부로서도 19개 법률과 58개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덩어리 규제를 손댈 엄두도 못 내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은 기업 투자가 저해된다는 이유로 1982년과 2003년에 각각 수도권 규제를 폐지한 바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규제와 기업집단 규제, 지주회사 규제 등도 국내에서는 규제가 언제 개선될지 예상하기 힘든 한국형 규제로 꼽힌다.

‘운전자 알선 금지’처럼 규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대립으로 개선이 물 건너간 경우도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규제를 없애려고 시도는 했지만 손님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택시 업계의 입김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고 귀띔했다.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접속 시간을 관리하는 ‘셧다운제’ 등은 실효성 없이 관련 산업의 발전만 옥죄는 한국형 규제로 지적됐다.

○ 규제 늘어 투자 위축…“대못 뽑아야”

한국형 규제는 국내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는 지난해 말 기준 1만5269건으로 2010년보다 2000건가량 늘었다. 규제가 늘면서 기업 활동이 둔화돼 2011년에 80%였던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지난해 75%대로 하락했다.

국내 기업의 투자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도 급감했다. 최근 10년간 외국인 직접투자 순유입액 평균치를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231억 달러인 반면 한국은 88억 달러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소 진통이 있더라도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한국형 규제의 ‘대못’을 뽑아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려면 규제 개선과 기업 수익성 회복, 고용 활성화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내 경제를 혈관이라고 보면 한국형 규제는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혈전에 해당한다”며 “규제를 대신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한국형 규제를 원칙적으로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대표적인 한국형 규제인 수도권 규제가 폐지되면 약 15조 원의 기업투자와 함께 1만35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흥국 경제위기 등으로 위축된 기업의 투자심리가 지나친 규제로 한 번 더 꺾일 수 있다”며 “개선할 수 있는 규제부터 개선해 나간다면 기업 수익성 회복과 고용 활성화 등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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